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 창립 21년 만에 처음으로 회원사가 아닌 협회 내부에서 상근 회장이 탄생했다. IT 업계 이슈가 늘어나고, 규제가 복잡해지면서 전문성을 지닌 협회장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협회 업무에 대한 부담감에 회원사 대표들이 협회장 자리를 고사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18일 인기협은 2021년 정기총회를 열어 박성호(사진) 사무총장을 제14대 협회장으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기업인이 아니라 협회 내부 직원 출신이 상근 회장이 된 것은 지난 2000년 협회 설립 후 처음일 뿐만 아니라 재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박 신임 협회장은 컴투스와 NHN(181710) 등 주요 게임사에서 법무와 대외협력 업무를 맡아왔다. 또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전문위원, 한국게임학회 부회장, 전자상거래 분쟁조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IT 전문가다. 인기협 관계자는 “그 동안은 회원사 대표들이 회장을 맡아왔지만 박 사무총장이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만큼 회장 적임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지난 3일 열린 이사회에서도 만장일치로 박 사무총장을 신임 협회장에 추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업 관련 협회장은 주요 회원사 대표가 맡는 것이 재계의 오랜 관례인 만큼 뒷말도 나온다. 한 기업 대관 업무 담당자는 “협회는 기본적으로 업계의 입장을 대변하고 정치권과 행정부의 규제 도입에 맞서는 조직”이라며 “이를 위해 국회의원, 장관과도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이름값 있는 회사의 대표가 회장을 맡는 것이 통례”라고 말했다. 실제 인기협 회장사는 지난 2013년부터 국내 대표 IT 기업 네이버가 맡아 왔다. 직전 회장은 한성숙 네이버 대표였고, 그 전에는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가 회장을 역임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네이버 등 IT 업계 기업인들이 “여러모로 부담만 되는 회장사 자리를 고사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인기협의 경우 회장 임기가 끝나면 경쟁사가 다음 회장을 맡아 왔기 때문에 관례상 이번에는 카카오(035720)가 차기 회장 역할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여민수 카카오 대표는 현재 인기협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협회 회장사는 각종 이슈 대응에 앞장서야 하고, 회원비도 많이 내야 한다”며 “날이 갈수록 규제 압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각 사가 전면에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인기협과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로 이원화 된 IT 기업 대표단체 구도에서 카카오가 회장사 자리를 고사한 이유를 찾는 시각도 있다. 카카오는 KISO 회장사를 맡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카카오가 양대 협회 회장사를 모두 맡기는 부담스럽고, 네이버가 다시 인기협 회장사를 맡아도 뒷말이 나왔을 것”이라며 “쿠팡·이베이코리아 등 전자상거래 업체들도 있고 엔씨소프트(036570)·넥슨 등 게임회사도 있지만 각자 업종의 협회를 챙기는 게 우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윤민혁 기자 beherenow@sedaily.com, 정다은 기자 downright@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