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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연기금 매도와 엘리트주의

심우일 증권부 기자





51거래일. 연기금이 유가증권 시장 내 종목을 계속 팔아온 기간이다. 그동안의 연기금 순매도 액수만 14조 4,962억 원에 달한다. 마침 코스피 지수도 횡보장을 이어가던 때였던 만큼 개인투자자들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에 불만이 컸다.

‘16.8%’라는 숫자 때문이었다. 국민연금이 기존 제시했던 올해 연말 국내 주식 비중 목표치다. 지난해 말 기준 포트폴리오 안에 국내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21.2%였음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은 이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주식을 연달아 팔아 치워야 했다.

연기금이 자신들의 릴레이 매도세를 정당화하는 논리도 ‘포트폴리오 전략’이었다.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연금을 원활히 제공하려면 최대한의 합리적인 전략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해외 주식이나 대체 투자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메시지는 여러 매체를 통해 개인투자자에게 충분히 전달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개인투자자들은 “국민연금은 주가 하락의 주범”이라며 분노했다.



일차적으론 국민연금이 매물을 거듭 쏟아낸 것에 대한 불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국민연금이 시장과 소통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단순히 “우리는 16.8%를 맞춰야 하니 어쩔 수 없다”며 일관한 것은 일종의 교조주의자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연기금에 모인다는 사실을 모르는 투자자는 없다. 그러나 지위상 우위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합리성을 타자에게 거듭 설파하면 자신을 엘리트주의자라고 홍보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밖에 없다.

이미 개인투자자들은 ‘동학개미’라는 유행어가 퍼지기 시작한 지난 1년간 기관·연기금과 자신 사이의 인식차를 실감했다. 개인과 기관이 공매도를 놓고 시각차를 보였을 때도 기관들은 “공매도에 가격 발견 기능이 있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했다. 증시에서 개인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원칙'만 거듭해 주입하는 듯한 방식은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연기금도 직접적으로 개인투자자의 의견을 경청하는 등 권위를 내려놓을 때가 된 것이다.

/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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