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 업계는 6대 수출 품목(2020년 기준)인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한국 경제의 기둥이지만 최근에는 온실가스 배출이 많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확산하고 기후변화 대응 요구가 커지면서 더 이상 ‘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항변이 잘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지난달 31일 찾은 현대오일뱅크 충남 대산 공장은 여느 정유·석유화학 공장이 그렇듯 제품 운송용 파이프라인이 여의도 1.5배 규모의 공장 전체를 정신없게 뒤덮고 있었다.
서해를 바라보고 대산 공장 서쪽에는 지난 2010년 증설된 고도화 설비 단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축구장 1.5배 규모(1만 2,750㎡) 부지에 꽉 들어찬 5층 건물 높이의 제3 수소 제조 공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연간 10만 톤 규모의 수소가 생산된다. 기존 1·2공장까지 포함하면 대산 공장에서만 연간 20만 톤의 수소가 생산된다. 이는 원유를 정제해 나오는 벙커C유에서 황(S) 성분을 제거하는 데 쓰기 위해 자체 생산하는 수소다. 나프타와 액화석유가스(LPG)를 개질(reforming)해 생산하는 수소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이산화탄소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레이수소다.
현대오일뱅크는 이런 수소 제조 공정을 활용해 이산화탄소를 제거한 친환경 블루수소를 오는 2025년까지 연 10만 톤 생산할 계획이다. 블루수소는 추가 정제 과정을 거쳐 수소차 연료로 쓰일 수 있도록 고순도 수소로 재탄생한다. 김명현 현대오일뱅크 기술부문장(상무)은 “대산 공장 내에 수소차용 수소 생산공정을 최근 착공했고 연내 국내 수소 충전소에 공급 예정”이라고 말했다. 1단계로 생산되는 수소차용 고순도 수소는 750톤으로 현대차 수소차 ‘넥쏘’ 600대를 충전할 수 있는 규모다.
연료전지 발전용으로도 수소를 공급한다. 이를 위해 현대오일뱅크는 현재 국내외 발전 사업 파트너사들과 50메가와트(㎿) 규모의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 건설을 논의하고 있다. 블루수소 생산 확대에 따라 발전 규모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레이수소를 블루수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는 쓰임새가 따로 있다. 연간 5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데 현대오일뱅크는 현재 10만 톤만 포집해 외부 판매하던 것을 내년까지 약 3배 늘릴 계획이다. 구매처는 탄산 제조 업체나 드라이아이스 생산 업체다. 나머지 20만 톤은 국내 대형 물류 업체에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산화탄소와 석유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활용해 연산 60만 톤 규모의 탄산칼슘을 제조하는 공장도 짓고 있다. 탄산칼슘은 친환경 건축 소재와 유리·종이 등의 원료로 쓰인다. 정유 업계로는 처음으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재활용하는 것이다. 김철현 현대오일뱅크 중앙기술연구원장(상무)은 “기존 정유 사업 외에 수소 등 친환경 신성장 분야 연구개발(R&D) 강화를 위해 연구 인력도 현재보다 2배 많은 150여 명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산=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