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3년 준공한 서울 서초구 우면동의 LH 5단지 전용 84㎡(4층)는 지난해 공시가격이 6억 6,000만 원이었지만 올해는 10억 1,600만원으로 무려 53.93%(3억 5,600만원) 치솟았다. 임대 주택으로 지어진 이 아파트는 인근의 분양 아파트인 서초힐스의 같은 면적, 같은 층 공시가격(9억 8,200만 원)보다 오히려 3,400만 원 더 높았다. 임대 주택이 일반 분양 아파트보다 공시가격이 높게 책정된 것 자체가 시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밖에 같은 단지 같은 동임에도 라인에 따라 공시가가 급등·하락하는 ‘복불복’ 사례도 나왔다.,
5일 제주도와 서초구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공시가격 사례가 속출했다. 제주도는 자체 검증 결과 공동주택 7가구 중 1가구가 오류, 서초구는 실거래가보다 비싼 ‘공시가 역전’ 주택이 전체의 3%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초구는 현실화율이 85% 이상인 단지만 1만 1,991가구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제주와 서초구는 공시가격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해줄 것으로 촉구했다. 전문가들 또한 “불투명한 산정 방식 때문”이라며 전면적인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시가 역전’ 속출…실거래 12억인데 공시가 15억=정부는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70.2%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자체 자체 조사 결과 이를 훌쩍 뛰어넘는 사례가 숱하게 발견됐다. 서초구가 지난해 특수 거래를 제외한 실거래 4,284건을 조사한 결과 공시가 현실화율이 80%를 넘긴 곳은 851가구로 전체의 19.86%를 차지했다. ‘현실화율 100% 이상’으로 공시가 역전 현상이 나타난 곳도 136가구(3.17%)에 달했다. 서초구는 관내 전체 공동주택 12만 5,294가구를 이 비율에 맞춰 계산하면 공시가 역전이 나타난 가구가 3,758가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공시가 역전은 주로 신축이거나 규모가 작아 거래 사례가 많지 않은 곳에서 나타났다. 지난해 8월 입주한 서초구 서초동의 한 아파트 전용 80㎡는 지난해 10월 실거래가가 12억 6,000만 원이었지만 공시가는 15억 3,800만원으로 공시가가 22.06%(2억 7 ,800만 원)나 더 높았다. 거래가 적은 연립·다세대주택 등에서는 한 건의 거래만 발생해도 공시가격이 두 배 이상 치솟는 경우가 발생했다. 서초구 서초동의 한 연립주택 전용 94㎡는 지난해 실거래가 한 건이 신고되면서 올해 공시가가 4억 7,700만 원에서 11억 2,800만 원으로 136.5%나 크게 올랐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한 제주에서도 전체 14만 4,167가구 중 67가구가 두 배 이상 공시가 상승을 기록했다. 올해 제주도의 공동주택 공시가 상승률은 평균 1.72%이지만 전체 가구의 3분의 1을 넘는 5만 3,517가구(37.12%)가 평균치를 초과한 공시가를 받아들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변화가 없었는데도 공시가격이 근거 없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단지 내에서도 공시가 편차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제주 A단지의 경우 같은 동 2호 라인은 공시가가 11% 안팎 하락한 반면 4호 라인은 7% 안팎이 올라 대조를 이뤘다. 같은 단지인데 한 개 동은 오르고 나머지 동은 하락한 경우도 있었다. 서초구 반포훼미리의 경우 동만 다른 같은 면적, 같은 층 아파트여서 사실상 시세가 같은데도 한 집만 공시가가 크게 올라 종합부동산세 대상이 되는 사례가 발견됐다.
◇‘서민 주택’에서 오류 더 빈번…전문가들 “제도 개선 검토해야”=특히 이 같은 사례는 대단지 아파트보다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소형 빌라에서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초구의 경우 평균 상승률인 13.53%를 세 배 이상 초과한 주택이 총 3,101가구인데 이 가운데 대부분이 다세대·연립 등 ‘서민주택’이라고 했다. 서초구에서는 올해 공시가 상승으로 105명이 기초연금 대상 자격을 잃을 것으로 예상됐다. 서초구의 한 관계자는 “보유세 상승 및 각종 복지 혜택 탈락 등 서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상한선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감정을 담당하는 한국부동산원의 전문성 및 인력 부실이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제주공시가격 검증센터 조사 결과 제주에서는 총 11곳의 숙박 시설이 공동주택으로 분류돼 공시가격이 책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는 펜션인데 아파트로 분류돼 과세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제주 검증센터의 한 관계자는 “현장에 가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인데 수년간 공동주택 공시가격으로 공시되고 있었다”며 “관광산업으로 유명한 강원·인천·충북 등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공동주택의 건축물대장과 현장조사 현황이 명백하게 다른 경우 공시대상에서 제외해야 하는데도 한국부동산원이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감정평가사들이 객관적 기준에 맞춰 평가해야 하는데 전문성이 부족한 부동산원이 맡으면서 오류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정수연 제주대 교수는 “납세자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공시가격 산출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 이덕연 기자 gravit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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