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XX년 X월 XX일 영해 상공에 적군 비행체가 침투한다. 인근의 아군 전투기 2대가 긴급 출격한다. 우리 손으로 개발·제작한 ‘KF-21보라매’ 전투기다. 보라매 편대는 실시간 데이터링크 기술을 통해 조기 경보기와 지상 레이더로부터 실시간으로 표적 데이터를 수신한다. 파일럿들은 즉시 강력한 쌍발 엔진으로 초음속 가속해 적기를 향한다. 이윽고 전방의 적기 4대를 120㎞ 이상(추정치) 거리에서 먼저 탐지·조준해 4발의 중거리 미사일을 쏜다. 적군기는 아직 아군기를 발견조차 못했다. 보라매 레이더의 탐지 거리가 적군기 레이더보다 월등히 길기 때문이다. 적군기는 보라매를 탐지·반격할 새도 없이 미사일을 피하느라 산개한다. 적기 가운데 3대는 회피에 실패해 격추됐다. 나머지 1대는 미사일을 교란하는 채프를 뿌리며 가까스로 회피한 뒤 미사일들로 반격한다. 그러나 적군기의 미사일은 빗나간다. 아군기의 항전 장비들이 ‘전파교란(재밍)’ 기술로 적군 미사일을 교란한 것이다. 곧이어 보라매가 근접해온 단거리 미사일로 남은 적기 1기마저 격추한다.
이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그려본 미래 전장의 모습이다. 그 주역인 한국형 전투기(KF-X)가 드디어 탄생했다. 정식 고유명칭은 ‘KF-21 보라매’로 결정됐다. 9일 제작사인 KAI의 경남 사천 공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첫 시제기 출고(롤아웃) 행사가 열렸다. 정부와 국내 방위산업계가 지난 19년간 정권을 초월해 뚝심 있게 전투기 국산화를 추진한 성과다.
보라매 시제기는 내년 상반기까지 총 6대가 제작돼 오는 2026년까지 각종 지상·비행시험 등을 거친다. 이어서 2026년부터 2032년까지 총 120대가 양산돼 실전 배치된다. 보라매 시제기가 향후 최종 시험을 마치면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여덟 번째 첨단 초음속 전투기를 개발한 국가 반열에 오른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정부는 2030년대 ‘항공 분야 세계 7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삼았다”며 전투기 엔진 등 핵심 기술의 자립도 제고 및 항공 산업 적극 지원 방침을 밝혔다.
군 당국 및 방위산업계 관계자는 이번 보라매 시제기를 성공적으로 출고한 것을 계기로 한층 더 진화된 전투기 기술역량 확보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주변국들이 5세대 스텔스 전투기 확충 및 개발·개량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르면 2030년대 중후반, 늦으면 2040~2050년대에는 주변국들의 5세대의 전투기 확보물량이 한층 더 늘어날 것이므로 우리나라도 보라매를 5세대 이상으로 한층 업그레이드하거나, 보라매에서 얻은 기술을 기반으로 완전히 새로운 5세대 이상 기종으로 신규개발하는 방안을 본격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해 실행에 속도를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공군력 대도약=보라매는 F-16·F-15 등 기존 4세대 전투기들을 넘어선 4.5세대 전투기로 개발됐다. 4세대 전투기보다 먼저 적 표적을 탐지·추적해 몰래 접근한 뒤 선제공격하고 적의 반격을 무력화하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보라매는 기존 F-16 대비 4.1배, F/A-18E전투기 대비 1.2배의 공대공 임무 효과를 낼 것으로 공군은 기대하고 있다. 공대지 임무에서는 F-16C 대비 1.3배의 효과가 기대된다.
이는 보라매가 적군의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는 저피탐 형상으로 기체가 설계된 데다 먼 거리를 넓은 각도로 감시하면서 동시에 여러 물체를 동시 탐지할 수 있는 에이사(AESA) 레이더를 갖췄기 때문이다. 표적의 식별·추적을 돕는 각종 전자광학 센서 장치, 적의 레이더 및 공격 무기를 교란·무력화할 수 있는 항전 장비 등도 이 같은 성능을 담보한다. 이들 기술은 모두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주도 아래 KAI·한화시스·LIG넥스원 등 국내 방위산업체들이 개발했다.
현존하는 전투기 중 4.5세대 전투기를 앞선 것으로 공인받는 것은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미국의 F-22(일명 ‘랩터’), F-35뿐이다. 중국은 J-20 및 J-31 전투기를, 러시아는 수호이-57전투기를 각각 5세대 스텔스 전투기로 개발·배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성능 결함 등으로 진정한 5세대 성능을 낼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보라매도 향후 5세대로 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췄다. 당국은 우선 2028년까지 4.5세대 전투기 기술 개발을 완료한 후 경제성 및 기술 타당성 등을 검토해 5세대 스텔스기로 업그레이드하는 방안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당장 4.5세대 능력만 겸비해도 보라매는 대한민국 공군력을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서 수입된 지 40년 이상 지난 3세대 전투기인 F-4·F-5를 전량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400기를 밑도는 우리 공군 전투기 중 30% 이상이 F-4·F-5인 것으로 전해진다.
F-4 및 F-5보다 상위급 기체인 KF-16도 2030년대에는 도입한 지 40년을 넘어서게 되는데 이를 대체하는 전투기를 어떻게 마련할지도 미래 공군전력을 판가름할 관건이다. KF-16을 대체할 전투기는 주변국들의 5세대 물량 확보나 6세대 전투기 개발 동향을 감안해 ‘5세대+’급이 5.5세대나 6세대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보라매를 향후 10여년 내에 ‘5세대+’급으로 진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6세대 전투기 개발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군 당국, 방위산업계, 국회가 체계적으로 준비해야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경제 파급력 기대=정부는 보라매 개발을 위해 지난 2015년부터 2028년까지 총 8조 8,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한 상태다. 여기에 양산 비용까지 더하면 120대 개발·생산에 총 18조 4,000억 원가량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데다 기술적 난도 역시 높아 정부는 2003년 3월부터 2014년 9월 사이에 무려 일곱 차례에 걸쳐 사업 추진 타당성 분석이나 사업 추진 전략 연구를 실시했다. 그 가운데 2003년 및 2012년 한국국방연구원(KIDA)과 2006년 한국개발원(KDI)이 각각 수행한 분석에서 사업 타당성에 대한 부정적 진단이 나와 보라매 개발이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위기 가운데서도 국산 전투기 개발은 정권을 초월해 릴레이 달리기처럼 이어졌다. 2001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산 전투기 개발을 천명해 불씨를 심은 데 이어 이명박 정부 시절 탐색 개발에 돌입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5년 체계 개발 계약을 통해 본격적으로 보라매 사업에 시동이 걸렸다.
당국자들은 보라매 사업이 최소한 30조 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무기체계연구원의 2017년 분석에 따르면 24조 4,000억 원가량의 생산 유발효과와 약 5조 9,000억 원의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기대된다. 이는 우리 공군이 구매하기로 한 120대와 인도네시아가 사업 지분 파트너로 참여하면서 구매하기로한 60대 등 총 180대를 양산했을 때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아시아와 중동 등 신흥국에서 추가 수출 가능성이 있어 실제 경제 효과는 ‘30조 원+알파’가 될 것으로 보인다. KAI의 한 관계자는 “아시아·중동·유럽의 10여 개국을 잠재적 수출 시장으로 보고 있다”며 “우선 4.5세대 시장의 중형기 분야를 틈새시장으로 뚫고 이후 보라매를 단계적으로 진화시켜 5~6세대 시장도 겨냥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다만 인도네시아의 경우 내부 정치적·재정적 상황으로 수요 변동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다른 신흥국에 대해서는 면밀한 시장조사가 필요해 수출 시장 개척을 위한 범정부·범산업계 차원의 총력적인 협업이 필요해보인다.
한편 무기체계연구원은 약 49조 5,000억 원의 기술 파급효과와 약 11만 명의 취업 유발효과도 예상했다. 보라매 양산 단계에서 국산화율을 6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기 때문이다. 현재 719개 국내 업체가 참여해 우선적으로 주요 구성품 100품목 중 69품목에 대한 국산화에 힘쓰고 있다. 방사청의 한 관계자는 “보라매 개발·양산에는 국내 국방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업 비용이 투입되지만 국산화율이 높아 비용 중 상당액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고 국내로 환류돼 고용 창출과 기술·산업 발전으로 선순환된다”며 국부 차원의 순기능을 소개했다.
/민병권 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