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한진해운 파산으로 잃어버린 해운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추진 중인 ‘해운재건 5개년 계획(2018~2022)’이 반환점을 돌아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해운재건계획을 시작할 당시까지만 해도 생각하지도 못 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선 현대상선은 사명을 HMM으로 바꾼 뒤 눈부시게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해운 동맹 ‘디 얼라이언스’에 가입하고 2만 4,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선박 12척을 투입하더니 지난해 영업이익 9,808억 원을 내며 10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지난해 3월 2,120원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지난달 3만 5,700원까지 오르며 무려 1,583%나 급등했습니다.
HMM의 활약 덕분에 2월 서비스수지마저 2014년 11월 이후 6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운송수지가 8억 1,000만 달러 흑자를 냈기 때문입니다. 한진해운의 유동성 위기가 시작된 이후 운송수지와 서비스수지는 만성 적자에 시달렸는데 HMM의 선복량이 늘고 운임도 개선되면서 흑자로 돌아온 것입니다. HMM은 수출 물류 대란 상황에서 임시 선박을 수시로 투입하면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습니다. 올해 1분기 만에 지난해 영업이익을 다 벌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HMM의 실적 개선이 정부의 해운재건계획이나 자체적인 경영전략보다는 외부 요인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는 점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국제유가가 크게 하락하면서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고 여기에 예상치 못한 물동량 급증에 운임이 크게 뛰어오른 것입니다. 컨테이너 운임을 보여주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1분기 931에서 4분기 1975까지 올랐습니다.
우호적인 업황 덕분에 HMM보다 덩치가 큰 글로벌 선사들은 훨씬 더 많은 이익을 냈습니다. 지난해 HMM이 1조 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내는 동안 세계 1위 선사 머스크라인은 EBITDA(감가상각 전 영업이익) 65억 5,00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연 평균 환율(1,180원 1전) 기준으로 7조 7,200억 원입니다. 독일 선사 하팍로이드 역시 EBITA가 31억 달러(3조 7,000억 원)로 전년 대비 41% 늘었습니다. 올해 초 일본 선사 ONE가 내놓은 지난해 실적 예상치도 EBITDA 기준 38억 7,000만 달러(4조 5,600억 원)에 달합니다. 해운재건계획으로 초대형 선박을 발주하지 않았더라면 격차는 더 벌어졌을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하지만 막대한 혈세를 들여 건조한 2만 4,000TEU 선박 12척 투입 효과도 충분히 나타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HMM의 선복량은 초대형 선박 인도로 2019년 43만 8,661TEU에서 지난해 70만 2,589TEU로 60%나 증가했습니다. 반면 수송 가능 선복량을 보여주는 BSA(Basic Slot Allocation)는 2019년 566만TEU에서 2020년 522만TEU로 오히려 7.7%가 감소했습니다. 수송량도 428만TEU에서 389만TEU로 9.1% 줄었습니다. BSA 대비 수송량을 보여주는 화물적취율도 75.7%에서 74.6%로 떨어졌습니다.
BSA는 선박마다 부여된 선사별 기본 선복량을 말하는데 통상적으로 얼라이언스 협의를 통해 배분됩니다. 얼라이언스 소속 선사들이 함께 노선을 구성한 뒤 투입한 선박당 각 선사가 실을 수 있는 공간을 나누는 방식입니다. 선복량이 단순히 선사의 덩치를 보여준다면 BSA는 실제 운송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협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선복량이 크게 증가했는데 BSA는 줄었다는 것은 HMM보다는 얼라이언스 내 다른 선사에 할당된 공간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큰 배는 많아졌는데 실어 나른 화물은 오히려 줄어든 셈입니다. 특히 2만 4,000TEU 초대형 선박이 투입된 유럽 노선의 실적 개선이 제한적입니다. 일각에서는 초대형 선박을 보유하고도 영업성과가 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해운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해수부와 HMM이 2만 4,000TEU 만선(滿船)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하는데 그 배에 실린 화물 대부분은 디 얼라이언스 내 다른 선사가 실은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에 HMM 관계자는 "얼라이언스는 원래 화물을 나눠 실으면서 불황 때 손실을 분담하는 것이 취지”며 “글로벌 선사와도 덩치에 비해 영업이익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설명했습니다.
HMM이 누리고 있는 해운 호황은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3월 1만 5,000TEU급 컨테이너선 예상발주량은 90척으로 당초 예상했던 25척보다 3배가 넘습니다. 규모가 작은 1만 2,000~5,000TEU급 선박도 신규 발주도 쏟아지면서 컨테이너선은 지난달 역대 최대 발주량을 기록했습니다. 선박 건조에 2~3년 걸린다는 점은 감안하면 2023년 이후엔 선박 공급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동량 증가율보다 선박 공급량이 많아지면 운임은 다시 떨어질 테고 해운사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합니다. 정부 해운재건계획이나 HMM 경영전략의 성패 여부도 그 때쯤 가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모처럼 찾아온 해운 호황이 반갑지만 곧 다시 찾아올 불황기를 대비해야 할 때입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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