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 운용 방향을 살짝 비튼 국민연금의 달라진 행보를 계기로 코스피가 두 달여 동안 머물렀던 횡보장을 본격적으로 깨뜨릴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당장 연기금의 국내 주식 매도 압력을 낮추고 삼성전자(005930)를 비롯한 대형주 중심으로 기관 수급의 숨통이 트일 경우 지수 상승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커지는 모습이다. 최근 국채금리 안정세와 원화 강세에 힘입은 외국인의 귀환, 사상 최대치가 예상되는 상장사들의 이익 추정도 코스피 3,200선 돌파 시도를 관측하는 요인들로 꼽힌다. 다만 기관 움직임이 크게 달라지기는 힘들 수 있으며 달러 강세의 가능성도 여전해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반론들도 나온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최근 3주 연속 오름세를 기록하며 박스권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코스피의 주간 상승률을 보면 3월 마지막주(0.05%), 4월 첫째주(2.36%)에 이어 둘째주(0.61%)에도 상승세를 타며 3,130선까지 올라섰다. 코스피가 3주 연속 상승한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1월 25일 사상 최고치인 3,208포인트까지 치솟은 뒤 하락해 3,000선을 하단으로 한 박스권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에서 매수세를 보이면서 지수를 이끄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민연금이 지난 9일 국내 주식 비중 밴드를 확대하는 리밸런싱 계획을 발표하면서 수급에 숨통이 트일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연기금은 올해 들어 코스피에서만 16조 7,012억 원 규모를 순매도했다. 이는 기관 순매도(30조 9,707억 원) 중 절반을 훌쩍 넘어선 비중이다. 기존에 만들어진 자산 배분에 맞추려는 움직임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그렇지만 국내 증시 상승을 찍어 누른다는 원성도 컸다. 이에 연기금의 ‘큰손’ 국민연금은 전략적으로 보유할 수 있는 국내 주식 비중의 일시적 상한을 18.8%에서 19.8%로 높이겠다는 방안을 꺼낸 것이다. 국채 금리 급등이 잦아들며 3,130선까지 회복한 코스피에 기관 수급에서 비롯된 긍정적 변화가 더해질지 주목받는 배경이다.
당초 증권가에선 국민연금의 코스피 순매도 규모를 약 19~20조 원으로 추정했다. 올 1월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보유 기준에서 리밸런싱의 상한선을 종전 18.8%로 가정한 수치다. 국민연금이 굴리는 자산 855조 원에서 약 160조 원 정도를 국내 주식 보유 한도로 봤던 것이다. 하지만 단순하게 계산해 상한을 1%포인트 더 높일 경우 보유 최대치는 약 170조 원으로 늘어나는 반면 매도는 약 9조~10조 원으로 줄 것이라는 해석이다. 2월 이후 연기금의 코스피 순매도가 약 8조 8,000억 원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줄기찬 매도 압력은 사실상 막바지에 도달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특히 연기금이 대규모 매도를 이어갔던 대형주 위주로 수급 환경이 나아지면 상승의 탄력은 더할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코스피 대장주 삼성전자를 연기금이 팔아 치운 규모만 5조 7,613억 원에 이른다.
외국인들도 점차 코스피에 우호적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만 2조 원 규모를 사들였다. 작년 11월 약 5조 원 순매수를 기록한 뒤 5개월 만에 나타난 방향 전환이다. 대외 교역의 회복과 원화 강세로 인한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실제 지난달 1,140원을 넘어섰던 원·달러 환율은 최근 1,110원대로 내려왔다. 안소은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수급 변화는 정보기술(IT) 중심의 제조업 경기와 교역 개선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이라면서 “외국인 자금 유입을 기반으로 코스피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이 보여줄 큰 폭의 이익 개선은 코스피 낙관론에 크게 힘을 싣고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코스피200의 올해 순이익은 현재 132조 원으로 예상된다. 사상 최대치여던 지난 2017년 130조 원의 기록을 넘어선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란 뜻이다. 내년 이익은 160조 원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 정명지 삼성증권 연구원은 “달러와 금리가 큰 폭으로 동반 하락하고 사상 최대 수준에 육박하는 수출과 실적 등을 감안하면 국내 증시의 상승 랠리의 재개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다만 섣부르게 장밋빛 전망만 그릴 건 아니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우선 국민연금이 곧장 순매수로 돌아설지 자체부터 미지수라는 반응이 나온다. 올해 국내 주식 보유의 큰 목표치인 16.8%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국민연금의 바뀐 방침은 일시적 매도 압력을 덜 수는 있지만 매수 우위로 주가를 끌어 올리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보건복지부도 “즉각 매도 중지나 추가 매입을 의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환율 동향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설명이 있다. 김효진 KB증권 연구원은 “미국 경기 호조로 인한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경계감과 위안 약세는 원화 강세를 제한할 것”이라고 했다.
/이완기 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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