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차량용 반도체 품귀현상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차량용 고성능 반도체 육성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현재 공급이 달리는 MCU(마이크로컨트롤유닛) 중심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진입하기보다는 미래 시장 중심이 될 AP(데이터 연산·처리 기능 수행 반도체) 등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12일 이지형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원은 '산업동향' 보고서를 통해 "미래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MCU 중심에서 AP와 같은 고성능 반도체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므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에서의 기회를 모색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발생하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품귀 사태는 코로나19로 인한 자동차업계의 수요 예측 실패가 그 원인이었다. 반도체 업체들은 고부가가치의 휴대폰·가전용 반도체를 우선 생산했고, 생산 시설들이 잇따라 자연재해로 가동이 중단되며 수급 악화를 불렀다.
수급 차질이 가장 큰 품목은 전장 시스템 제어를 수행하는 MCU다. 12~16주 정도였던 생산 리드 타임(생산 계획부터 입고까지의 기간)은 현재 26~38주 이상까지 늘어났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TSMC에 주문이 폭주한 탓이다. 이때문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생산을 줄여왔다. IHS마킷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반도체 공급난으로 인한 자동차 생산 차질 물량은 130만대에 이른다.
이 연구원은 "현재 자동차에 MCU 기반의 분산처리형 전자제어장치(ECU)가 탑재(대당 40여개)되고 있지만 향후 5~6년 전기차·자율차로 전환이 가속화되며 AP 기반 집중처리형 고성능 제어기(1대당 3여개)가 채택될 전망"이라며 "견고한 글로벌 강자들이 자리 잡은 MCU 중심 차량용 반도체 시장으로의 진입보다는 기술 변화 속에서 새롭게 조성될 AP(데이터 연산·처리 기능 수행 반도체) 시장에서 기회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차량용 반도체가 통합 칩으로 점진적으로 통합·대체되고, 다양한 종류의 신규 모빌리티(Urban Air Mobility, Personal Air Vehicle 등)에 확대 적용된다면 충분한 수요를 확보하고 규모의 경제 달성도 가능하다"며 "AI 가속기, 보안칩, 네트워크 프로세서, 고대역 센서IC 등 고성능반도체 시장은 미래차 분야 기술 형성 단계로 글로벌 기업들도 연구개발 중이며, 국내 선두 소프트웨어 업체와 반도체업체의 협력을 통해 AI·보안·데이터 등의 시장에 도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들은 차량용 반도체 98%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MCU 등 주요품목의 국내 공급망은 전무하다. 차량용 반도체는 필요수명 15년 이상, 온도요건 ?40~155도, 재고보유 30년 이상 등 가정용·산업용에 비해 사용 조건이 까다롭고 '개발-테스트-양산'에만 10년 내외가 소요된다. 이 때문에 NXP(네덜란드), 르네사스(일본), 인피니언(독일), ST마이크로(스위스), 마이크로칩(미국) 등 일부 기업이 공급을 하는 과점시장이 형성돼 왔다. 이들 업체를 포함해 전세계 차량용 반도체 70%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곳이 바로 TSMC다.
/변수연 기자 div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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