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지수가 지난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악몽을 딛고 21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갔다. 국내 증시 대표 지수인 코스피가 3,000 선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번번이 종가 1,000 선 앞에서 무너졌던 코스닥이 새 장을 연 것이다 . 일각에서는 시장의 초점이 코스피에서 코스닥 중소형주로 옮겨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2일 코스닥은 전 거래일보다 11.26포인트(1.14%) 오른 1,000.65로 마감하며 20년 7개월 만에 다시 1,000 선을 돌파했다. 코스닥지수가 1,000 선을 넘은 것은 2000년 9월 14일(1,020.70)이 마지막이다.
중소 벤처기업의 성장을 위해 의욕적으로 만들어진 코스닥은 올해로 출범 25년을 맞았다. 1996년 ‘기준 지수 1,000’으로 출발했던 코스닥은 이후 흑역사로 가득하다는 평가가 많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IMF 외환위기를 맞은 데다, 이후 정부의 벤처 육성 정책 등에 힘입어 2000년 3월 2,830을 넘어서는 최고 활황을 보였지만 얼마 가지 못해 IT 버블 붕괴를 경험한 것이다. 2004년 코스닥 기준을 100에서 1,000으로 바꾸는 굴욕도 맛봤다. 결국 제 자리를 찾아가기까지 21년이 걸린 셈이다.
코스닥은 1월 26일 장 중 1,007포인트까지 오르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 채 800 선 초반까지 하락하는 굴욕을 겪었다. 하지만 한 달여 전인 3월 11일께부터 점진적으로 다시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의 힘이 컸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가파르게 상승한 코스피와 달리 코스닥은 비교적 덜 올랐다는 분석이 나오며 코스피에서는 매도 우위가 강했던 외국인과 연기금이 코스닥시장에서는 매수 우위를 보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특히 연기금의 경우 유가증권시장에서는 16조 8,000억 원을 팔아치웠지만 같은 기간 코스닥에서는 4,916억 원 규모를 순매도했다. 특히 지난 한 달간은 코스닥에서 순매수 기조가 훨씬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지난달 11일부터 이날까지 총 1,626억 원을 순매수한 것이다. 이 기간 유가증권시장에서 연기금은 여전히 3조 원을 팔아 치웠다.
전문가들은 1월 기획재정부가 올해 업무 계획을 통해 연기금의 코스닥시장 투자 비중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방침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당시 기재부는 현재 투자자산의 1~2% 수준에 불과한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비중을 좀 더 확대하고 투자 성과를 판단할 때 쓰는 추종지표에 코스닥을 포함해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를 도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기관투자가들이 코스닥 비중을 늘릴 경우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아 변동성이 커지는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최근 연기금의 지나친 국내 주식 매도세에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최근 국내 대표 연기금 중 한 곳인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의 전략적·전술적 자산 배분의 비중을 변경해 국내 주식의 보유 비중을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변경안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16.8%까지 줄여야 했던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은 19.8%까지 허용된다. 실제 국내 주식 보유 범위가 넓어진 이날 연기금은 코스닥에서 230억 원을 순매수하며 ‘천스닥’ 형성에 한몫을 했다.
전문가들은 별다른 악재가 없는 만큼 연기금의 매수세 등이 이어질 경우 코스닥이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시장의 초점이 코스피 대형주에서 코스닥 중소형주로 이동할 것”이라며 “코스닥 우위의 로테이션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특히 오는 5월 공매도 재개를 앞둔 상황에서 코스닥 중소형주에 유리한 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경래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3월 이후 금지됐던 공매도가 5월 3일 재개될 예정이지만 대상은 코스피200·코스닥150 등 대형주에 한해 제한적으로 재개된다”며 “이 같은 조치는 코스닥 내 시가총액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코스닥 중소형주에 유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날 코스닥시장의 시가총액은 411조 1,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코스닥 시총은 2000년 말 29조 원에서 10년 뒤인 2010년 말 98조 원으로 늘었고 2020년 말 385조 6,000억 원을 기록했다 .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코스닥지수가 2000년 닷컴 버블 이후 20년 만에 1,000 선을 웃돈 것은 그간 시장 체질 개선을 위한 노력을 통해 상장기업 성장이 동반된 내실 있는 성장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완기 기자 kingear@sedaily.com,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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