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은 그동안 성장 가능성이 높은 초기 혁신 기업의 자금 조달이나 성장에만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하지만 쿠팡의 사례에서 보듯 최근에는 성장 기업도 거대해지고 대기업화하는 추세죠. 코스닥이 초기 혁신 기업뿐 아니라 재무구조가 우량한 성장 기업, 대기업화된 미래 기술 기업을 아우르는 역동적인 시장이 되려면 어떻게 변해야 할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는 중입니다.”
코스닥이 20년 7개월 만에 1,000포인트를 돌파한 다음날인 1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집무실에서 만난 김학균 코스닥위원회 위원장은 ‘천스닥’의 기쁨보다 ‘이천스닥’에 오르기 위한 고민을 먼저 말했다.
천스닥의 의미를 낮춰 보는 것은 물론 아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3월 27일 임기를 시작한 첫날 코스닥이 522포인트였지만 1년 만에 두 배로 껑충 뛰어오른 점을 언급하며 “현재의 실적보다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코스닥의 가치가 시장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한가운데서 코스닥 기업들이 ‘K방역’의 주체로서 활약했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정받았던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기술력이 뛰어난 초기 혁신 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코스닥에서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도록 돕지 않았더라면 글로벌에서 인정받는 진단 키트 기업들이 탄생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코스닥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미래에 투자하는 성장주 시장으로서 정체성을 뚜렷이 확보하고 국내 유망 기업들에 매력 있는 증시로 인정받아야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최근 국내 유망 기술 기업들이 한국 증시를 등지고 미국으로 향하고 있는 현실이 대표적인 사례다. 쿠팡이 한국 대신 미국 뉴욕 증시를 선택하면서 마켓컬리·두나무·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미래 성장성이 크게 기대되는 국내 혁신 기업들도 미국을 택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기업들이 조금이라도 더 자신에 유리한 시장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코스닥을 선택했을 기업들마저 미국 증시 또는 코스피를 동일한 선택지로 두고 있는 상황에 대해 아프게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코스닥에서 성장한 기업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코스피로 이전 상장을 꾀하는 것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국내를 대표하는 대형 기술·성장주로 꼽히는 NAVER·카카오·엔씨소프트·셀트리온 등은 모두 코스닥 시장에서 출발을 했지만 어느 정도 몸집을 키우자 대규모 자금 조달이 쉬운 코스피로 옮겨 갔다. 최근에도 시가총액 상위 몇몇 기업들이 코스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2000년 이후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옮겨간 상장사만 총 45곳에 이르는데 이들 기업이 코스닥에 머물렀다면 천스닥은 이미 훌쩍 넘겼을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평가다.
두 가지 문제에 대해 김 위원장은 “우선 기업들이 코스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크게 변해야 한다는 문제를 중대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가급적 빠르게 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특히 중대형 기술 기업과 재무가 우량한 성장 기업들을 지원할 부분이 있을지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스피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는 제도를 발굴해 현실에 맞는가를 재검토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며 “기관·외국인 투자가들이 코스닥에서 편하게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정부 및 유관 기관과 협의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적자 기업 등 부실 코스닥 기업들을 미리 걸러내 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가는 것도 중요한 숙제다. 김 위원장은 “기술특례제도 등으로 ‘제2의 벤처 붐’을 주도하고 있다고 자신하면서도 때때로 등장하는 실패 기업들이 논란을 빚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투자자 보호를 위한 공시제도 개선 등도 신중히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코스닥은 현재 실적보다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모험·자본시장으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기업의 미래 가치를 평가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더욱더 정교한 방법론을 강구해 더 많은 혁신 기업들을 상장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 이승배 기자 ba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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