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5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기준금리를 현행 0.50%로 동결해 사실상 제로금리가 1년 이상 지속된다. 이 총재는 “경기 회복세가 안착됐다고 확신하기 어렵다”면서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긴축으로 선회하는 데 대해 “고려하기 이르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기획재정부와는 엇갈린 경기판단이다. 그는 다만 “올해 성장률이 3%대 중반은 가능하다”고 밝혀 다음 달 27일 예정된 금통위 후 성장률 전망치를 0.5%포인트 안팎으로 공식 상향할 뜻을 밝히는 한편 최근 국제 유가 급등 등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은의 물가 안정 목표치인 2%를 넘길 가능성도 열어뒀다. 한은이 인플레이션보다는 경기 방어에 주력하겠다고 밝혔지만 한은 내부는 물론 시장에서도 미국이 고용 회복을 기반으로 금리 인상에 나설 시점에 자칫 실기를 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회의 후 “경제 회복세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이나 코로나19 전개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고,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은 크지 않아 통화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해나갈 것”이라며 기준금리를 현행 0.50%로 동결했다. 금통위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쇼크에 지난해 5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0.50%로 인하한 후 일곱 번째 동결 행진을 이어갔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0.5%를 기록했고 올 들어 1분기까지 1.1%를 보여 금리는 사실상 제로인 셈이다.
이 총재는 금통위 회의 후 기자 간담회에서 “국내 경제 회복 흐름이 강해지고 물가상승률도 높아지면서 가계부채 증가, 주택 가격 상승 등 금융 불균형 위험 차원에서 금리를 선제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수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코로나 전개 상황, 백신 접종 등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성이 아직 크고 경기 회복세가 안착됐다고 확신하기 어려운 만큼 정책 기조 전환을 고려하기에 이르다”고 설명해 다음 달 27일 예정된 금통위에서도 기준금리 동결을 시사했다. 상반기 마지막이 될 다음 달 통화정책 결정 금통위도 기준금리를 0.50%로 동결하면 제로금리 수준의 초저금리 상황은 1년을 훌쩍 넘기게 된다.
이 총재는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 속에 최근 수출과 투자 증가세를 짚으며 “연간 성장률이 3%대 중반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 2월 한은이 내놓은 성장률 전망치인 3.0%를 다음 달 금통위 후 0.5%포인트 안팎으로 공식 상향해 제시할 뜻을 전한 것이다. 그는 다만 코로나 확산세가 지금보다 악화하지 않고 백신 접종도 정부의 목표가 이행되는 것을 전제로 했다.
이 총재는 아울러 금통위를 통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월 전망(1.3%)을 웃돌아 당분간 2% 내외 수준에서 등락할 것”이라고 밝혀 기저 효과와 유가 상승, 농축산물 가격 급등에 따라 소비자물가가 한은 목표치인 2%를 일시적으로 넘을 가능성도 열어뒀다. 그는 다만 물가상승률이 연간 기준으로는 2%에 못미칠 것으로 봤다.
일각에서 집값 상승의 원인이 풍부한 유동성이라는 지적에 대해 이 총재는 “주택 가격이 오름세를 지속하는 것은 주택 수급에 대한 우려와 가격에 대한 기대 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밝혀 부동산 가격 상승이 유동성보다는 정책 실패가 원인이라고 지목한 셈이다.
최근 8,000만 원을 넘기도 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대해 이 총재는 “적정 가격을 산정하기 어렵고 가격 변동성도 매우 큰 특징이 있어 암호자산 투자가 과도해지면 투자자 관련 대출 등 금융 안정 위험이 커진다”고 경고했다. 그는 “암호자산이 지급 수단으로 사용되는데 제약이 아주 많고 ‘내재 가치가 없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 팩트(사실)라고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CBDC) 발행이 암호화폐 시장에 미칠 영향을 묻는 말에는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 총재는 “CBDC가 발행되면 암호화폐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겠지만 어느 정도일지는 CBDC의 발행 구조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발행하는 데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투기 수요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코로나19 이후 1년여간 국내 고용 사정이 악화하고 서비스업 생산능력이 저하된 여건을 지적하면서 “잠재성장률이 코로나19 이전보다 훨씬 낮아졌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은은 지난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2.5~2.6%로 추정했다. 이 총재는 “경제위기를 겪으면 노동 투입과 자본축적이 크게 위축되고 생산성도 저하돼 잠재성장률이 하락한다”며 “코로나19가 아직 진행 중이라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잠재성장률을 재추정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손철 기자 runiron@sedaily.com,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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