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빚내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합니다. ‘영끌’, ‘빚투’ 모두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빚을 지면 가난해지지만, 빚이 없어도 가난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주식 부자, 부동산 자산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이들은 “지금의 빚이 내 자산을 더 부풀려 줄 것”이란 기대를 하며 빚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상위 20% 고소득자가 평균 1억 이상의 빚을 갖고 있으며 이 빚은 이들의 자산을 더 부풀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쩌면 ‘빚’이라는 거, 잘 쓰면 약이 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전 세계가 빚에 난리인 걸까요?
◆태초에 빚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
사실 우리는 모두 의도치 않게 빚을 지고 삽니다. 모든 돈은 빚에서부터 시작했으니까요.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기본적인 얘기부터 시작해볼게요. 어떤 한 섬이 있습니다. 이 섬에는 지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 시민들의 돈을 보관하는 은행, 그리고 시민 5명이 있습니다. 중앙은행은 시민들에게 각각 만원 씩 화폐를 발행합니다. 다들 똑같이 만 원이 생겼죠. 그러던 어느 날, 시민 한 명이 물고기를 떼로 잡아왔어요. 다들 굶주려 있던 터라 가진 돈의 절반을 주고 물고기를 샀죠. 시민 1명은 3만원이 됐고, 나머지는 5,000원씩 갖고 있어요. 시민 1명은 2만원을 은행에 저금해둡니다. 이때까지는 누구도 빚이 없죠.
그러던 어느 날 배 한 척이 등장합니다. 시민 중 1명이 배를 만들었다며, 이 배에 탈 사람은 만 원을 달라고 합니다. 한 명은 그냥 낼 수 있지만 나머지 3명은? 돈이 부족하죠. 은행에 각각 5,000원씩 대출을 요청합니다. 은행은 갖고 있던 2만원 중 1만5천원을 시민들에게 빌려주고 이자로 매달 천원을 받습니다. 시민 2, 3, 4는 이자 천 원이 없어 다시 시민 1에게 천 원씩 빌리고 이자 200원을 내야합니다.
그럼 여기까지 한 번 살펴볼까요? 한 달 뒤 중앙은행이 발행한 5만원은 시중에서 어떻게 돌고 있을까요? 은행은 예금 2,000원, 받을 돈(미수금) 15,000원, 이자수익 3,000원. 시민 1은 자산 17,000원에 받을 돈(미수금) 3,000원, 이자수익 600원. 시민 2, 3, 4는 대출금 5,000원, 대출 이자 1,200원. 총 부채 6,200원. 배를 만든 시민 5는 45,000원을 갖게 됩니다. 처음 5만원이었던 돈은 ‘자산’, ‘부채’, ‘이자수익’ 등의 꼬리표가 달려 시중에 돌고 있는 겁니다. 이를 ‘통화 승수’라고도 하는데요. 중앙은행이 1원을 찍었을 때, 몇 배의 돈들이 시중에 유통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갖고 있는 돈의 대부분이 빚으로 이뤄져 있고 내가 가진 자산이 누군가에겐 그만큼의 빚이라는 거 이해가 가시나요? 이자를 갚으려면 누군가의 자산이나 대출금을 가져와야 하고, 대출금을 더 못 갚는 사람은 파산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당연히 수입이 적고 빚이 많은 사람이 파산할 가능성이 높겠죠. ‘에너지 보존법칙’처럼 ‘빚 보존법칙’도 존재하는 겁니다.
◆나의 빚이 너의 자산으로…부채의 사슬
현재 우리의 모습도 이 섬을 확대한 것과 같습니다. 사실 그것보다 말할 수 없이 복잡하죠. 상품을 개발해서 그걸로 수익을 얻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생계를 위해 그 상품을 사야하는 사람. 상품을 살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부채가 생긴 사람. 그 이자를 매달 갚지만 원금은 못 갚는 사람. 원금은커녕 이자도 갚지 못해 다른 대출에 손을 벌리는 사람. 고금리 금융상품에 가입하기 위해 또 대출을 하는 사람. 그 안에서 손해를 보는 사람. 이익을 보는 사람. 돈을 수단으로 한 상품이 여기 저기 널린 시대에서, 당신도 이 사슬 어디엔가 속해 있습니다.
◆팽창한 부채가 터질 때 벌어지는 일
빚은 적당히 지고 있을 땐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빚이 적정 수준을 넘어가고, 팽창했을 때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집니다. 이때는 내가 빚을 빌리지 않았다고 해도 자석처럼 연쇄적으로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대표적으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들 수 있는데요. 2000년대 초반 미국은 IT 버블이 끝나고 9.11 테러에 이라크 전쟁까지 일어나면서 경제가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중앙은행은 경기 불황책으로 초저금리 정책을 펼쳤죠. 집값의 일부만 지불하면 집을 소유할 수 있도록 했고, 은행에서 집값을 빌리고 이자와 원금을 분할 상환하도록 했습니다. 은행은 대출 채권을 연방주택저당공사에 팔았고, 그곳에서 파생상품으로 만들어져 다시 시중에 판매됐습니다.
이자도 높은 데다 당시 부동산이 활황기였기 때문에 파산 위험도 없어 보여 아주 잘 팔렸죠. 은행은 대출이 가능한 계층을 넓혀 신용도가 낮은 서브프라임 계층에도 ‘묻지마 대출’을 해주기 시작했고, 더 많은 사람이 집을 살 수 있게 되면서 부동산 가격은 더욱 폭등했습니다.
경기가 회복되는 듯하자 중앙은행은 초저금리 시대를 끝내고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금리를 올리자 이자를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파산하며, 은행과 투자은행도 연쇄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당시 158년의 역사를 가졌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할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시겠죠.
이 대표적인 금융회사가 파산하며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찾아왔고, 세계 채권들이 자국으로 회수되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됐습니다. 부채 비율이 이미 많은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자 부채가 자산을 넘어서며 도저히 소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난 겁니다. 대출은 또 다른 대출을 낳았고, 그 결과는 ‘파산’이었습니다. 아까 섬 안의 시민 2, 3, 4가 다음 달에 겪을 일들인 거죠. 시민 1과 5는 배도 타고 고기도 잡고 이자도 받으면서 자산을 불릴 수 있는 거고요.
◆결국 살아남지 못하는 사람들
결국 더 많은 빚을 진 사람, 빚을 갚을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파산할 확률이 높고,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될 확률이 높아지죠. 말 그대로 꼬박 월급이 나오고, 금리가 오르더라도 매달 월급의 일정 부분을 원리금으로 낼 수 있는 사람. 사업에 성공해 당장 수익이 많은 사람. 원리금을 낼 필요가 없는 사람. 남의 부채를 자산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 위기에서 살아남고, 이들의 자산가치는 더 올라갑니다.
반면 매달 월급이 일정치 않은 자영업자, 소상공인. 회사가 부실해 경제 위기가 왔을 때 실직할 수 있는 사람. 월 소득이 적어 부채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파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제 빚으로 부자가 될 수도, 거지가 될 수도 있다는 말 이해가 가시나요.
그런데 잠깐 궁금한 게 생기죠? 내가 빚을 못 갚으면 그 빚은 다 어디로 갈까요? 파산하기 전에는 채무자가 모든 손해를 감당해야하지만, 파산 이후에 채무자의 불행은 채무자에게만 미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갚아야 할 빚이 있고 꼬박 이자를 내야하기 때문에 돈을 쓰지 않게 되고요. 그렇게 되면 상품이 팔리지 않고 문을 닫는 회사가 많아집니다. 자연스럽게 실업률이 올라가겠죠. 그러면서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고 상품의 값이 떨어지면서 각 가정의 자산 가치도 떨어집니다. 직접 채무를 지지 않았어도 채무자를 상대로 제품과 서비스를 상대했기 때문에 개인의 부채가 지역 전체, 국가 경제에 부담이 되면서 모두의 문제로 넘어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남의 파산을 넋 놓고 볼 순 없는 일이죠.
◆부채를 갚기 위해 화폐를 찍었던 짐바브웨의 최후
그럼 중앙은행이 직접 화폐를 찍어내 그 빚을 갚으면 안되냐고요? 그런 나라도 있었긴 합니다. 짐바브웨의 무가베 대통령은 2000년 토지를 국유화하고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경제가 어려워지자 화폐를 계속 찍었고, 이를 국고로 썼습니다. 이로 인해 짐바브웨는 2000년대 초부터 2009년까지 물가가 5,000억% 오르며 상상을 초월하는 물가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짐바브웨 달러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낮은 화폐로 전락해버렸죠. 1,050,000,000,000 짐바브웨 달러가 계란 3개 가격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짐바브웨 정부에서는 2009년 자국 화폐를 모두 폐기처분하고 미국 달러를 공용화폐로 채택하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베네수엘라에서도 니콜라스 마두로가 지폐를 계속 발행해 뿌리는 바람에 베네수엘라 지폐의 가치가 심하게 떨어져 종이의 무게대로 환율을 정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죠.
◆부채를 쉽게 줄이지 못하는 이유
그렇다면 빚이 너무 많아서 터져버리기 전에 다 같이 ‘빚 갚기 운동’ 같은걸 하면 안되는 걸까요? 그게 또 어려운 것이 우리가 빚을 지지 않기 위해선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데 그걸 누군가 특정할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해 ‘집’이나 ‘주식’을 포기해야 빚을 갚을 수 있는데 내가 포기하면 또 누군가는 그 ‘집’을 사고 ‘주식’을 사서 그 돈으로 자산을 늘립니다. 어쨌든 버텨서 경기가 회복되면 그 자산 가치는 올라가고, 가지고만 있어도 돈을 벌 수 있으니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리고 시장은 ‘팽창’과 ‘위축’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가진 자와 포기해야 하는 자를 걸러냅니다. 그러면서 자산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격차를 더욱 크게 만들죠. 하지만 ‘팽창’했을 땐 누구도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부채가 과연 무엇인지, 특히 누구에게 위험한지 알아보았는데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앞으로 초저금리 시대가 끝이 날 때, 내 소득이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지 꼼꼼히 계산해 따져보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영상 유익하셨나요? 다음 영상에서도 우리 삶 속에 스며든 경제 이야기를 찾아 재미있는 캠핑을 떠나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경제썸 ‘캠퍼스’의 캠핑 친구, 버디 유나였습니다.
/정수현 기자 value@sedaily.com, 김지윤 인턴기자 wldbs5596@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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