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튜브 게임 방송을 시작하려던 직장인 A 씨는 컴퓨터 조립 전문가에게 가격을 문의하다가 깜짝 놀랐다. 지난해만 해도 200만 원 수준이면 고급 사양의 개인용 컴퓨터(PC)를 구매할 수 있었지만 이젠 유튜브 방송에 필요한 최소한의 그래픽카드를 구매하는 데만 2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써야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옵션을 고민하던 A 씨는 결국 컴퓨터 구매를 포기했다. 그는 PC 제조 판매회사로부터 “급등한 PC 가격도 가격이지만 사실상 조립 PC 구성에 꼭 필요한 그래픽카드 자체를 지금은 아예 구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암호화폐 사냥꾼들이 시중에 있는 그래픽카드를 다 휩쓸어가다시피 해 적당한 가격의 PC를 조립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A 씨는 일단 그래픽카드의 가격이 떨어지는 시점까지 기다리기로 했지만 적어도 6개월 이상을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내저어야만 했다.
암호화폐 채굴에 따른 그래픽카드 품귀 현상으로 컴퓨터 주변기기를 제조·유통하는 중소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그래픽카드 가격 폭등으로 조립 PC 수요가 급감하면서 모니터·키보드·스피커 등 부품 수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외국산 모니터 등 PC 주변기기를 유통하는 B사는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가량 줄어들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PC 수요가 증가하면서 실적이 상당 부분 개선됐는데 올해는 정반대로 암호화폐 이슈로 모니터 수요 자체가 뚝 끊겼다.
B사의 한 관계자는 "비트코인 등 채굴에 쓰이는 그래픽카드 가격이 폭등하면서 조립 PC를 사려는 수요가 '관망'으로 바뀌었다"며 "PC 자체를 구매하지 않으니 모니터·케이스·키보드·마우스 등 주변기기 역시 팔리지 않아 매출도 지난해 대비 25~30%가량 감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게이밍 PC, 노트북 등 수요는 여전하지만 소비자들이 가격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게이밍 키보드 등 주변기기를 제조·판매하는 C사의 한 관계자 역시 "게이밍 키보드와 헤드셋·마우스 등 주변기기 판매가 줄어들면서 용산전자상가 분위기가 굉장히 침체돼 있다"며 "PC 제품이 아닌 생활 정보기술(IT) 가전 기기 마케팅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폐 과열 현상으로 실제 그래픽카드 가격은 암호화폐 가격처럼 폭등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 지포스 RTX 3070 제품은 지난해 10월 60만 원대였는데 현재는 200만 원까지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200만 원이면 이 그래픽카드를 포함해 PC 조립 완제품을 구매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200만 원으로 겨우 그래픽카드만 살 수 있다. 그나마도 제때 맞춰 그래픽카드를 사려면 여기에 웃돈을 얹어줘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픽카드 품귀 현상으로 개인 고객뿐 아니라 PC방의 신규 PC 수요와 업그레이드 주문 역시 줄어들고 있다. 서울 강서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코로나19로 매출이 안 나오는데 그래픽 카드 가격 폭등으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PC 업그레이드는 뒤로 미루고 인테리어나 커피머신 정도만 바꾸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박호현 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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