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SK텔레콤 사장(SK하이닉스 부회장)이 21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투자 확대를 언급한 것은 D램과 낸드플래시에 치중돼 있는 SK하이닉스의 포트폴리오를 파운드리 분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진입 과정에서 성장에 새로운 엔진을 달겠다는 것이다.
박 사장은 특히 SK의 지배구조 전환을 총괄하고 있어 그의 이날 발언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박 사장은 지난해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할 때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자회사인 시스템IC를 통해 파운드리 사업을 하고 있으나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시스템IC는 8인치 웨이퍼 기준 월 8만 5,000장의 생산능력를 보유했으며 청주에 있는 8인치 파운드리 설비를 중국 우시 공장으로 이전하고 있다. 이는 규모가 커지는 중국 팹리스 시장 공략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자회사인 시스템IC의 덩치를 키우거나 파운드리 업체에 대한 인수합병(M&A) 또는 지분 투자를 통해 파운드리 사업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SK하이닉스는 앞서 매그나칩의 파운드리사업부인 ‘키파운드리’에도 펀드 출자자 형태로 지분을 투자한 바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를 키우는 데 20여 년이 걸린 만큼 자체적인 역량 강화보다 M&A가 더 효율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다만 SK하이닉스의 M&A 등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SK의 지배구조 개편이 속도를 내야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SK텔레콤은 인적 분할 과정에서 지주사인 SK㈜와 신설 투자회사 간 합병은 추진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나 업계에서는 궁극적으로 두 회사가 합병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SK는 최근 SK텔레콤을 인적 분할하기로 했지만 SK하이닉스의 투자 걸림돌로 작용하는 지배구조상의 손자회사 지위가 변하지 않았다. ‘SK㈜→SK텔레콤→SK하이닉스’ 지배구조가 ‘SK㈜→SK텔레콤 신설 회사→SK하이닉스’로 바뀔 뿐 SK하이닉스가 SK㈜의 손자회사임에는 변화가 없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손자회사는 M&A에 나설 때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
이 때문에 결국 SK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SK㈜와 SK텔레콤 신설 회사를 합병해 SK하이닉스의 지위를 ‘자회사’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 사장이 이날 파운드리 투자 강화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만큼 M&A를 통한 파운드리 사업 확장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지배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SK하이닉스가 아닌 SK텔레콤 신설 회사가 SK㈜의 자회사이자 투자회사로서 직접적인 반도체 투자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홍우 기자 seoulbird@sedaily.com,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