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장소지만 사람들이 멀리하려는 시설물 중 하나가 화장실이다. 빅토르 위고(1802~1885)가 “인간의 역사는 곧 화장실의 역사”라고 한 것처럼 화장실과 인간의 삶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인간이 먹고 배설하기 위한 원초적인 생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위생 관념 등에 따라 멀리하고 싶어하는 공간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통일신라 시대 왕태자가 살았던 곳으로 알려진 동궁터(사적 제18호 동궁과 월지)의 위세 높은 건물터 중에서도 유독 7평(24.7㎡) 남짓의 두 칸 건물지가 눈에 띈다. 화강암을 정교하게 다듬어 가운데 구멍 뚫은 변기를 설치하고, 그 좌우에는 발을 디딜 수 있게 넓은 노둣돌을 설치한 수세식 화장실이 그것이다. 이 화장실은 용변 후 오물처리를 위해 항아리 등에서 물을 떠 지하로 연결된 배출 시설로 흘려보내는, 그야말로 당시 최고급 화장실인 셈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통일신라 혜공왕 시절(767년) ‘대궐 북쪽 화장실에서 두 줄기 연꽃이 피었다(宮北厠?中 二莖蓮生)’는 기록에서 화장실의 존재를 처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동궁터에서 발굴된 화강암 변기와 노둣돌과 똑같이 생긴 실물자료는 불국사 경내와 황룡사터의 당시 건축 석재들 사이에서도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 중요 시설에는 수세식 화장실이 조성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고학적 조사현장에서 화장실 유구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점차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력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화장실 유적의 미생물 분석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건강상태나 식생활을 규명할 수 있으며, 외국의 사례처럼 고환경까지도 복원할 수 있는 분야이다. 또한 화장실 구조의 구체적인 양상을 파악하면 시대별·계층별 화장실 문화를 가늠해 볼 수 있으니 또 하나의 흥미로운 연구분야임에 틀림없다. /어창선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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