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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실명 계좌·해외송금 규정 불명확…손놓은 정부에 은행 속앓이

■소극적 관리·감독에 은행 부담 가중

당국 '거래소 계좌 발급 요건 구체화' 약속 안지켜

불법 적발 땐 은행만 연대책임…"규정없어 답답"

차익 거래 목적 해외송금 제한도 법적 근거 모호

26일 오전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서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비트코인 실시간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거래소 폐쇄’ 발언 이후 암호화폐 시장의 혼란이 심화된 가운데 불똥이 은행권으로 튀고 있다. 사실상 암호화폐거래소의 생명줄을 쥐게 된 은행권에 실명 확인 입출금 계정(실명 계좌)에 대한 거래소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지만 은행들은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애매한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를 핑계로 관리·감독에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은행권의 부담만 커졌다는 지적이다.

A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암호화폐에 대한 금융 당국의 입장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자산이라고 하기에는 변동성이 크지만 새로운 기술의 ‘초기’ 단계인 점을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난달 25일부터 시행된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특금법)에 따라 암호화폐거래소는 오는 9월까지 금융 당국에 신고를 마쳐야 한다. 해당 법에 따라 사업자는 한국인터넷진흥원으로부터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은행으로부터 실명 계좌를 확보해야 한다. 금융 당국은 시행령을 통해 은행이 사업자의 시스템, 업무 지침을 확인해 자금 세탁 위험을 식별·분석·평가한 뒤 실명 계좌를 발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향후 자금 세탁과 관련한 불법행위가 적발될 경우 은행도 연대책임을 지는 구조다.

문제는 은행권이 부담하는 리스크에 비해 실명 계좌 발급 요건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9월까지 실명 계좌를 발급받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관련 문의는 많이 들어오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어떤 기준을 근거로 심사하는지 정해진 게 없다”며 “이미 거래소와 제휴를 맺고 있는 은행들의 경우 해당 거래소를 ‘신규’로 보고 심사해야 하는지, ‘연장’으로 봐야 하는지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꼬집었다.



금융 당국이 은행에 자금 세탁과 관련해 거래소의 관리·감독을 맡겨놓고 ‘나 몰라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당초 특금법 논의 시 금융 당국이 약속한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난 2019년 11월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손병두 당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법 시행에 따라 거래소의 실명 계좌 발급이 더 어려워진다는 우려에 대해 “은행들이 마냥 거절하지 못하도록 저희가 시행령 등에 발급 요건을 정하도록 하겠다”며 “요건이 맞기만 한다면 은행이 계좌 발급을 거부하지 못하고 취급 업소들이 건전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당국이 손을 놓은 사이 은행권에서는 공동의 가이드라인(참고 자료)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은행연합회는 개별 은행이 실명 계좌 발급 시 참고할 수 있도록 초안을 만들어 배포했다. 암호화폐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지방은행·시중은행 등 3~4곳과 실명 계좌 발급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아직 확답을 받지는 못했다”며 “은행에서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개별적으로 추가할 항목 등을 확정한 다음에야 진행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금융 당국이 법적 체계나 가이드라인을 완비하지 못한 책임을 은행에 떠넘기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시중은행들은 금융 당국의 권고대로 해외 송금 중 수신처가 의심스러운 거래, 한도 이상의 송금을 요구하는 경우 등에 대해 해외 송금을 제한하고 있다. 해외·국내 거래소 간 암호화폐의 차익이 목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송금을 제한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암호화폐의 차익 실현 거래를 목적으로 한 해외 송금을 막을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업계는 이 같은 제한이 외국환거래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가 불분명해 외국환거래법상 자본거래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자금 세탁 방지를 규정하는 특금법에 비춰봐도 암호화폐와 관련한 모든 해외 송금을 자금 세탁 의심 행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암호화폐와 관련된 공직 윤리나 이해 충돌 방지 관련 규정도 없는 상태다. 공직자의 재산 신고 대상에 암호화폐가 빠져 있다 보니 공직자의 보유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인사혁신처는 암호화폐 투자가 늘어나는 점을 고려해 재산 증감 사유로 기재하는 방안을 안내하고 있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암호화폐가 내년부터 과세 대상이 됐지만 공직자의 재산으로는 취급되지 않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암호화폐와 관련해 여러 규제가 없는 점을 이유로 업권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듣지 않았다”며 “지금 정부는 암호화폐 사업자의 옥석을 가리기보다 모두를 잠재적 불법 사업자로 취급하면서 부담을 금융사에 떠넘기고 있다”고 항변했다.

/김지영 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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