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계가 조 단위 투자 계획을 내놓은 가운데 새 판을 짤 콘텐츠 수장들의 윤곽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눈길을 끄는 새로운 수장들의 공통된 이력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CJ ENM에서 한솥밥을 먹은 70년대생 콘텐츠 기획·제작자라는 점이다. 후발 주자로서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에 맞서 차별화된 콘텐츠를 내놓아야 하는 과제를 CJ ENM 출신들이 어떻게 풀어갈 지 관심이 쏠린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 OTT 웨이브는 이찬호 전 스튜디오드래곤 책임 프로듀서(CP)를 콘텐츠 전략을 책임질 콘텐츠전략본부장(CCO)로 선임했다. 이 신임 본부장은 웨이브가 앞으로 콘텐츠 분야에 투자할 1조원을 책임지게 된다. 그는 지난 2004년 당시 CJ 미디어(현재 CJ ENM)에 PD로 입사해 티비엔(tvN)의 주요 계보가 된 다양한 작품을 기획했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친 건 CJ ENM의 경쟁력을 입증한 드라마 ‘미생(2014년)’과 티비엔(tvN) 10주년 특별기획으로 제작한 드라마 ‘시그널(2016년)’, ‘도깨비(2016년)’를 연달아 흥행시키면서다. 이어 신인이었던 이수연 작가를 발굴해 ‘비밀의 숲(2017년)'을 성공시키며 안목을 입증했다. 이어 CJ ENM의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으로 자리를 옮겨 스튜디오드래곤의 기획·제작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도 기여했다. 이 신임 본부장은 “웨이브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구상하고 있다"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강력한 K-콘텐츠 라인업을 만들어 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웨이브는 이 신임 본부장이 해외 시장에서도 통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 적임자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태현 웨이브 대표가 직접 나서 반년 가까이 영입에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웨이브 관계자는 “필모그래피만으로도 설명이 되는 분인 만큼 이 본부장의 합류로 수준 높은 오리지널 작품들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미 스릴러·휴먼드라마 등 장르별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많이 갖고 있는 상태인 만큼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KT가 올 초 콘텐츠 법인 ‘스튜디오 지니’를 출범하면서 선임한 김철연 공동 대표도 CJ ENM 출신이다. 김 공동 대표는 동아TV에서 제작 PD로 일을 시작한 뒤 CJ ENM에서 20년간 기획과 배급까지 경험한 콘텐츠 전문가다. CJ ENM에서는 영화 채널을 이끈 뒤 사업 전략·글로벌 사업·콘텐츠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이후 네이버에서 엔터 서비스를 맡아 1년 간 IT업계 경험을 쌓기도 했다. 김 공동 대표는 현재 지적재산권(IP) 확보를 비롯해 제작사 관계자들을 만나며 기획 작품을 구체화하고 있다. 김 공동 대표는 “20년 동안 CJ에서 제작·채널 편성·마케팅·유통·글로벌 사업까지 모든 일을 했다”며 “이 경험을 한 데 모아 정말 한번 K-콘텐츠의 성과를 이뤄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SK브로드밴드의 콘텐츠 자회사 미디어에스는 지난 3월 김현성 전 CJ ENM 사업전략국장을 콘텐츠 운영 총괄로 영입했다. 김 전 국장은 CJ ENM 드라마사업국장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사업의 일환으로 중국에서 드라마 공동 제작을 맡은 경험이 있다. 김 총괄은 지난 달 8일 콘텐츠 채널S를 개국하고 강호동, 신동엽 등 예능인이 직접 출연·기획에 참여하는 예능 프로그램 ‘잡동산’, ‘신과 함께’를 론칭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OTT업계 콘텐츠 수장들로 CJ ENM 출신들이 잇달아 영입된 이유는 “그들의 경험 자체가 큰 자산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획 위주로 콘텐츠 차별화에 나서고 있는 OTT 업계로서는 규모가 있는 대작 제작은 물론 기획·제작·배급 등도 경험해 본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문화 콘텐츠 산업에서 20년이 넘는 업력을 갖춘 CJ ENM이 쌓아온 인적 자산은 국내 전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자산”이라며 “현실적으로 CJ ENM 출신들처럼 OTT 비즈니스에 필요한 다양한 경험을 갖춘 인력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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