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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90년 역사 품은 '붉은 교회'…서울시민 위한 '문화공간'으로

■ 체부동 생활문화센터

일제가 문 닫게 해 한때 빵 공장 운영

'中서 50억 인수' 뿌리치고 시가 품어

佛·英식으로 벽돌 쌓고 한옥 별채까지

'붉은 벽' 증축 과정 나이테처럼 드러나

오케스트라 맞춤형으로 내부 새 단장

한옥을 필요에 따라 연결-구분 가능

체부동 생활문화센터 전경. 상징과도 같은 붉은 벽돌과 높은 첨탑은 리모델링을 거치면서도 거의 변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남았다. /사진제공=남궁선 사진작가




서울 종로구 서촌 인근의 한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붉은 벽돌의 옛 교회 건물 하나가 시선을 붙잡는다. 오래된 서양 양식으로 벽돌을 쌓아 올린 이 건물은 높다란 첨탑과 붉은 배경에 하얀 페인트로 투박하게 새긴 ‘체부동 성결교회’ 글씨가 허름한 한옥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런 곳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장소 같은데, 오히려 그러다 보니 분명 오래된 사연이 있는 건물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 교회는 90년째 이곳을 지키며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체험한 역사의 산증인이다.

이 건물이 주목 받는 것은 서울시가 체부동교회를 인수한 뒤 리모델링을 통해 역사 보존과 지역 상생으로 재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교회 건물이 이제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예술문화 공간인 ‘체부동 생활문화센터’로 탈바꿈했다. 서울시 미래유산이자 제1호 우수 건축 자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역사의 산증인 체부동교회=체부동교회는 일제강점기였던 지난 1931년에 지어졌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 산업화 시대 등 굵직한 시대를 지나면서 조금씩 모습을 바꿔왔다. 성도 수가 늘어나자 1943년에는 일제가 강제로 문을 닫게 해 빵 공장으로 운영한 일도 있었다. 교회로서의 역할을 다시 시작한 것은 해방 후인 1945년 9월. 교인들이 예배당을 회수해 재건한 뒤 오늘까지 이어져왔다.

주변이 유명 관광지화되면서 몇 년 전에는 중국인 사업가가 50억 원을 제시하며 인수 의사를 드러낸 적도 있다. 하지만 지역 주민과 신도들은 역사를 담은 이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해 서울시에 ‘시세의 반값에 매입해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시는 체부동교회를 인수한 뒤 역사적 건축물의 지역 상생을 위한 재탄생을 시도했다. 교회 건물을 개조해 지역 주민들을 위한 예술 문화 공간인 ‘체부동 생활문화센터’로 탈바꿈했다.

체부동 골목과 맞닿은 한옥 부분 외관의 모습. 전통적인 한옥은 서양식인 교회와 형태가 다르지만 붉은 벽돌을 매개로 하나의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 /사진제공=남궁선 사진작가


◇동서양 건축양식 어우러져=체부동 생활문화센터는 오래된 세월을 반증하듯 여러 번의 증개축을 거쳤다. 김세진 지요건축사사무소 소장은 “1931년 신축됐다는 문헌상 기록은 남아 있지만 그 이후 몇 차례의 증개축을 거쳤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이 건물은 증축 과정을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파악할 수 있다. 건립 당시 이 건물은 벽돌의 긴 면과 짧은 면을 교차로 쌓는 프랑스식이 적용됐다. 하지만 해방 이후 교회 증축 때에는 단마다 긴 면 또는 짧은 면만 사용하는 영국식으로 쌓았다. 여기에 한옥까지 어우러졌다. 이 밖에 천장 속 목조 트러스(삼각으로 연결한 골조구조) 구조 등 각종 동서양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특색 있는 건물이다.

외형상 가장 큰 특징이라면 시선을 압도하는 붉은색 벽돌이다. 서울시와 김 소장 모두 건물의 정체성과도 같은 ‘붉은 벽’ 보존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김 소장은 “붉은 벽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쌓기 방식의 변화를 그대로 담고 있는 기록일 뿐 아니라 인근의 붉은 벽돌 또는 붉은색 타일로 이뤄진 건물군과 어우러져 체부동 골목의 독특한 경관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물의 붉은 벽이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이 붉은 벽이 유일해서가 아니라 장소성의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붉은 벽은 서양식인 예배당과 한옥 별채라는 서로 다른 형태를 공통된 감각으로 연결해주는 주된 요소이기도 하다.



아쉬운 것은 예산상 문제로 붉은 벽이 리모델링을 거치면서도 매끈하게 정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줄눈을 재시공하거나 특수 방식으로 벽을 세척하는 방안도 고려됐지만 예산이 부족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옛 모습 고스란히 ‘붉은 벽’을 놓아둔 것은 시간을 담은 건물을 그대로 남겨두는 방식으로 하나의 구축 방법이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존 예배당 건물을 개조한 음악 공간인 ‘체부홀’의 실내 모습. 130여석의 관객 입장이 가능하다. /사진제공=남궁선 사진작가


◇교회에서 시민 위한 음악·세미나 공간으로=옛 모습을 거의 대부분 유지한 웅장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깔끔하며 세련된 모습으로 정리됐다. 생활문화센터로 새롭게 태어난 이 건물은 기존 예배당 건물을 활용한 음악 분야 생활 문화 공간 ‘체부홀’과 한옥 별채(금오재)를 활용한 카페 및 세미나 공간으로 구분돼 있다. 130여 석 규모의 체부홀은 서울시민 오케스트라 모임을 위한 연습 및 공연 공간으로 대관되고 있다. 한옥은 간단한 음료를 마시며 강좌를 듣거나 어울릴 수 있는 소박한 분위기의 공간이다.

예배당 부분은 기둥이 없는 ‘무주공간(無柱空間)’의 형태다. 천장에 숨겨져 있던 목조 트러스 구조는 천장면을 걷어내 드러냈다. 이렇게 확보된 체적은 잔향 시간을 늘려 양질의 음향 조건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됐다. 또 붉은 벽의 안쪽 부분은 검은 벽돌로 치장 쌓기 하고, 측면에 톱니 모양의 요철을 만들어 차음 효과를 내도록 했다.

한옥 부분은 기존 한옥이 갖고 있던 기본 형태를 유지하되 두 개의 영역으로 새롭게 구성해 나눴다. 한 쪽은 문화 강좌와 세미나를 할 수 있는 부분이고, 나머지는 지역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마을 카페다.

체부홀(예배당)과 한옥은 구분된 공간이면서도 하나의 연결된 형태를 띠기도 한다. 교회 쪽에 설치된 접이문과 한옥의 들문을 열고 닫음에 따라 한옥 마당-한옥-체부홀은 하나의 영역으로 연결되기도, 나뉘기도 한다. 공연과 세미나 등 본래의 목적대로 운영되다가도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 소장은 “두 영역을 한옥 부분 출입구로 구분해 시설의 독립성과 개별성을 고려했다”며 “두 공간이 공유하는 작은 마당이 있어 각 시설에서 외부 공간과의 직접적인 연계가 가능하다”고 특징을 설명했다.

골목과 맞닿은 체부동 생활문화센터의 모습. 예배당 쪽 창문은 기능상 이유로 형태만 남고 사용되지 않는다. /사진제공=남궁선 사진작가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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