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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나라곳간·탈원전 청구서…차기정부에 떨어질 정책 폭탄 [관점]

원전 7기 폐쇄·취소·중단으로 전기요금 인상 후폭풍

5년간 재정적자 409조원…이전 정부 10년치 두 배

국가채무비율 60%초과 시간 문제…증세 압력 가중

골든타임 놓친 국민연금 개혁, 2023년 ‘외통수’ 몰려

경북 울진군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 예정 부지. 탈원전 정책으로 4년 가까이 착공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멀리 보이는 구조물은 운영 허가가 나오지 않아 시운전 중인 신한울 1·2호기./서울경제DB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24일. 산업통상자원부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업무 보고를 할 때다. 경제2분과 위원들과 산업부 간부진(장차관 제외)이 국정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쟁점은 단연 탈(脫)원전 정책. 산업부는 탈원자력발전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관련 절차와 법 규정, 피해액 추산 등을 보고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정신 못 차리고 있네”였다. 김은경(문재인 정부 초대 환경부 장관), 김좌관 위원(현 한국전력 이사회 의장) 등 다른 분과 위원들까지 들어와 “탈원전을 하자는데 원전 수출이 웬 말이냐”고 질책까지 했다고 한다. 이후 산업부 에너지·자원 라인들이 죄다 바뀌면서 탈원전 로드맵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0일로 취임 4주년을 맞는다. 국민의 높았던 기대가 실망감으로 변해가는 가운데 최근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정교하고 세밀한 전략 없이 독선과 오만 속에서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였다. 현재진행형의 정책 실패가 한두 개가 아니다. 집값 폭등과 일자리 쇼크, 소득 주도 성장은 정책 실패의 결정판이었다. 국가 재정이 화수분인 양 흥청망청 돈을 뿌려 미래 세대의 세금 부담을 키웠다. 생색은 현 정부가 다 내고 차기 정부가 꼼짝없이 뒤치다꺼리해야 할 처지다. 정권은 5년으로 끝나지만 졸속·과속 정책의 후유증은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1년 뒤 출범하는 차기 정부에서 폭발할 3대 정책 폭탄을 추려본다.

탈원전 후유증 본격화…수조원대 피해 보상 소송전


경북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짓다 만 채 방치된 아파트. 원전 4기 건설 및 운영에 따른 인규 유입에 대비해 투자했다가 탈원전의 직격탄을 맞았다./서울경제DB


차기 정부는 탈원전 비용 청구서를 떠안게 된다. 신한울 3·4호기는 착공 직전 사업 추진이 보류됐고 천지 1·2, 대진 1·2호기도 백지화됐다. 월성 1호기는 2019년 말 영구 폐쇄되면서 전면 개보수 비용 7,000억 원을 날려버렸다. 탈원전의 날벼락을 맞은 지방자치단체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경북도는 피해 규모 산정을 마치는 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침이다. 최소 5조 원에 달하는 법정 지원금과 지방 세수 감소가 직접적 손실이다. 고용 감소와 재산권 제약 등 사회·경제적 손실까지 더하면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한국수력원자력도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제작비, 천지 원전 토지 보상비 등 최소 1조 원 이상의 매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김명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탈원전 10년이면 원전 산업 생태계는 완전히 파괴돼 원전 수출 길마저 막힌다”며 “차기 정부에서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신한울 3·4호기부터 즉각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료 인상은 사실상 외길 수순이다. 탈원전에 탈탄소 정책까지 겹쳐 설상가상이다. 원자력과 석탄의 대체 전원인 액화천연가스(LNG)와 태양광의 발전 원가는 원자력발전보다 2~3배 높다. 한국전력은 이미 ‘연료비 연동 전기요금제’를 도입한 상황이다. 노후 원전의 수명이 종료될 때마다 폐쇄냐 재사용이냐를 두고 사회적 혼란과 갈등도 예상된다. 차기 정부에서 설계 수명이 종료되는 원전은 2023년 고리 2호기를 시작으로 총 6기에 이른다.

재정 중독에 거덜난 나라 곳간…국정 운영 발목


지난해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정부가 올해 3월 19조 원 규모의 추경을 마련했다./연합뉴스


2019년 5월 16일 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국가 채무 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대 초반에서 관리하겠다고 보고하자 문 대통령은 “40%의 근거가 뭐냐”면서 나라 곳간 문을 열어젖힐 것을 주문했다. 불과 4년여전 “박근혜 정부 3년 만에 나라 곳간이 바닥나서 GDP의 40%에 달하는 국가 채무를 국민과 다음 정부에 떠넘기게 됐다”고 비판한 게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다.

차기 정부는 문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제시한 ‘40%’가 아닌 ‘60%’의 빚더미에 올라설 처지다. 출범 첫해부터 재정 운용에 비상이 걸린다. 문재인 정부 첫 예산이 반영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누적 재정 적자는 177조 원. 여기에 지난해 9월 정부가 내놓은 국가재정운영계획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에 각각 109조 원과 123조 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5년간 누적 재정 적자액 409조 원은 이명박 정부(98조 8,000억 원)와 박근혜 정부(129조 8,000억 원) 합산치의 2배에 육박한다. 현 정부가 남긴 저질 재정 체력은 차기 정부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을 게 분명하다.





역대 정부마다 지켜온 건전 재정 기조가 무너지면서 나랏빚 증가 속도는 가히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협의의 국가 채무(중앙+지방정부 채무·D1)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660조 원에서 올해 965조 원으로 급증하게 된다. 같은 기간 국가 채무 비율은 36%에서 48.2%로 뛴다. 차기 정부는 ‘나랏빚 1,000조 원, 국가 채무 비율 50% 시대’로 출발한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국가채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2022년 국가 채무 비율은 51.4%, 2024년에는 58.7%로 뜀박질한다. 유럽연합(EU)의 재정 준칙인 국가 채무 비율 60%를 초과하는 것은 차기 정부로서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옥동석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갈된 재정 체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성장 동력 회복에 큰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며 “차기 정부는 국가신용 등급 강등 우려와 증세 압력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공기업 채무와 연금 충당 부채까지 합친 광의의 국가 부채를 기준으로 하면 국가 부채 비율이 100%를 훌쩍 넘기게 된다.

펑크 난 건강·고용보험…국민연금 개혁은 정치적 뇌관


2018년 8월 대한의사협회가 ‘문재인 케어’ 정책 수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연합뉴스


멀쩡하던 건강·고용보험 기금은 거의 파탄지경이다. 줄곧 흑자를 기록한 건강보험 기금은 ‘문재인케어’가 본격화된 2018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차기 정부에서 ‘펑크’ 날 위기에 몰렸다. 고용보험 기금은 실업자 급증으로 올해 버티기가 간당간당하다. 현 정부는 2025년까지 자영업자를 포함한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를 추진해 기금 고갈과 보험료 인상 우려를 키우고 있다. 사회보험 기금이 고갈되면 혈세로 메우거나 보험료를 인상하는 길밖에 없다. 사회보험 재정 안정화 대책은 오롯이 차기 정부의 몫이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가 쌓아놓은 공적 기금을 쓰는 데 일말의 주저도 없었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민연금 개혁에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보건복지부가 2018년 제4차 국민연금 장기 재정 추계를 토대로 개혁 초안을 보고하자 청와대는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며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정부가 다시 마련한 개혁안도 ‘그대로 내고 더 받는’ 대선 공약에 밀려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개혁을 미룰수록 국민 부담은 늘어난다. 재정 지속성을 유지한 채 국민연금을 지금처럼 받으려면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8%로 올려야 한다. 개혁을 5년 미루면 5년 치 보험료 총액만큼 미적립 부채가 더 쌓인다. 미적립 부채는 지난해 1,500조 원에 이른다. 윤석명 한국연금학회장은 “국민연금 개혁은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다”며 “이제는 국민이 부담할 수 있을 정도의 정상적인 요율 인상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차기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연금 개혁 과제는 정치적 뇌관이나 다름없다. 5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는 차기 22대 총선 1년 전인 2023년에 도래한다. 기금 고갈 시기가 빨라질 재정 추계를 하고도 개혁을 또다시 미루기도 어렵다. 어쩌면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권구찬 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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