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 투자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를 공식화한 것은 이대로 가면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미국·중국·대만 등 경쟁 국가들에 완전히 빼앗길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 때문이다.
실제 미국은 ‘반도체산업지원법’ 등을 통해 각종 연구개발(R&D)과 인프라에 최대 500억 달러(약 56조 3,000억 원)를 쏟아붓기로 했으며 중국은 오는 2030년까지 반도체 장비·원자재 등에 관세를 물리지 않는 파격적인 혜택을 이미 주고 있다.
하지만 당정은 그동안 이런 세금 감면 혜택이 대기업에만 집중된다는 ‘특혜’ 논리를 앞세워 지원 확대를 망설이다가 속도전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부랴부랴 특별 지원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세계 1위지만 시스템 반도체에서는 다른 나라에 뒤처지고 있어 지금이라도 미국 등 경쟁 국가 수준의 파격적인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6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와 세무 업계 등에 따르면 이번 세액공제 확대를 통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받을 수 있는 세금 감면(세액공제) 혜택은 연간 수천억 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구체적인 시행안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줄 만한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장 R&D 및 시설 투자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율이 확대된다. 현재 전통 제조업 분야 대기업들의 기술 투자는 대부분 ‘일반 업종’으로 분류돼 1%(시설 투자)~2%(R&D) 수준의 세금 감면을 받는다. 예를 들어 철강 제조사인 포스코가 올해 1,000억 원 규모의 일반 시설 투자를 단행했다고 가정할 경우 이 투자 금액의 1%인 10억 원만 산출 세액에서 공제해주는 식이다.
대기업이더라도 ‘신성장·원천기술’ 분야에 투자한 것으로 인정 받으면 R&D 공제율이 20~30%까지 늘어나고 시설 투자 공제율도 3%까지 확대되지만 이 같은 ‘인증’을 받는 것 자체가 까다롭다. 글로벌 톱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삼성전자도 상당수 투자가 일반 투자로 분류돼 세액공제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존 일반, 신성장·원천기술 외에 ‘반도체’ 트랙이 별도로 추가된다. 반도체 투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세액공제율이 적용되는 셈이다. 정부는 별도 공제율을 아직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여당인 민주당이 반도체 R&D에 대한 공제율을 40%로 상향하는 법 개정안을 이미 발의해둔 상태다. 시설 투자 세액공제도 ‘3%+α’까지 상향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세율을 삼성전자에 반영해보면 대략적인 세금 감면 액수를 추산해볼 수 있다. 가령 삼성전자의 지난해 반도체 시설 투자액은 약 32조 9,000억 원이었다. 이 금액 전부를 개정 세법상 공제 대상으로 인정 받는다고 단순 가정할 경우 삼성전자는 약 9,870억 원(32조 9,000억 원×3%) 이상의 법인세 감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삼성전자의 지난해 R&D 비용(약 21조 1,114억 원)은 사업보고서에 공시되는 R&D 비용과 세법상 R&D 비용의 정의와 인정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이 금액 전체에 대한 세액공제가 이뤄진다고 보기는 힘들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반도체도 메모리(D램·낸드플래시)와 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AP·이미지센서) 등 여러 가지 제품으로 나뉘는데 이 제품들이 모두 반도체 트랙에 올라탈지, 아니면 일부만 올라탈지 등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아 현 상태에서 세액 감면 규모를 추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일단 조세특례법을 개정해 세금 감면 제도를 설계해놓으면 일몰 기간이 다가오더라도 혜택을 종료하기 어려워 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에 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정부는 한편 세액공제 확대와 더불어 다양한 ‘K-반도체 벨트’ 종합 정책을 이르면 이달 중 발표할 계획이다. 소부장 반도체펀드와 모태펀드, 시스템 반도체 상생펀드 등에 총 2,800억 원을 추가 지원해 직접 자금 지원을 늘리는 한편 산업은행이 나서 시설 자금 장기 저리 융자 프로그램도 추가 조성할 방침이다.
반도체 인력을 늘리기 위한 대학 내 정원 조정도 추진한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이날 “업계에서는 현재 연간 1,856명인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산업 성장세 확대 등을 감안해 대학 내 학과를 조정하는 한편 대학원 정원 증원, 공동 학과 신설 등의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세종=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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