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망이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던 1999년, 20대 청년 창업가였던 정원찬(사진) 대표는 승승장구했다. 서울 아파트 단지에 대량으로 가정용 인터넷망 설치 사업을 벌여 직원 10명을 거느릴 정도로 사업을 키웠다. 하지만 늘어난 수주 규모를 맞추기 위해 늘린 하청 업체들에 발목을 잡혔다. 인건비는 늘어만 가는데 미수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정 대표는 2002년 폐업의 쓴잔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20여 년 만에 정 대표는 두 번째 사업에 도전했다. 오랫동안 일하던 자동차 부품회사가 안전벨트 버클 공장을 설립하면서, 정 대표에게 대표직을 제안했다. 그는 "부품 제조 사업은 결국 사람을 관리해서 불량률을 낮추는 게 중요한데, 과거 창업을 통해 경영을 해본 경험을 높이 평가받았다"며 "이제 나이도 있다 보니,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는 심정으로 회사의 성공에 집중하기로 각오를 다졌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2019년부터 전북 전주 공장에서 '대인세이프티'를 경영하기 시작했다. 중견기업 우신시스템과 우신시스템의 자회사 에이에프에프씨(AFFC)로부터 원부자재를 무상사급 방식으로 공급받아 수출·내수용 안전벨트 버클 생산을 하고 있다. 버클 단품 조립의 자동화 설비를 갖춘 최신식 스마트 공정을 갖췄다. 한 달에 완성차 15만~19만 대 분량의 안전벨트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다.
안전벨트 제조는 특히 생명을 담보하는 만큼 숙련된 근로자의 기능·품질 검사 절차가 매우 중요하다. 정 대표는 “안전벨트는 작은 경량 제품이지만 품질 검수가 매우 까다롭다”며 “충돌 테스트, 체결 검사, 전기 장치 검사 등 최첨단 장비와 함께 종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작업자의 손을 꼭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재도전 사업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재창업 첫 해부터 북미 시장 주요 고객사인 GM이 대규모 파업하면서 예상보다 일감이 확 쪼그라들었다. 심지어 지난해 상반기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하반기에는 자동차용 반도체 대란이 벌어지며 공장 가동률이 곤두박질쳤다. 공장 문을 열고 반년 이상 작업 숙련도를 끌어올렸지만 정작 수주가 없어 직원들이 떠날 위기였다. 정 대표는 "수주 물량의 70%가량인 수출에 문제가 생기자 가동률이 55%까지 줄어들었다"며 "신규 직원부터 최소한 4~5개월은 숙련 과정이 필요한데, 안 그래도 지방에 있는 공장에서 손발이 잘 맞는 직원을 떠나보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월급을 포기하고 개인 신용으로 제2금융권 대출까지 활용해 단기 유동성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폐업 이력으로 신용등급도 낮아 일반적인 정책 자금이나, 은행 대출은 불가능해서였다. 어려운 순간, 실패 기업인에게 재창업에 필요한 자금을 융자해주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재창업자금이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난감하던 차에 중진공에서 직접 상담을 통해 가장 빨리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자금을 검토해준 결과, 운전자금을 지원받아 핵심 직원 20여 명의 인건비를 보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지난해와 올해 각각 1억 원을 지원받았다. 이후 수주 물량이 점차 회복되면서 현재 공장 가동률은 60% 이상으로 올라왔고 매출도 2019년 7억 원에서 지난해 12억 원으로 50% 이상 증가했다.
정 대표는 올해 초 벌써 개인의 악성 부채부터 해결했고, 하반기에는 내수 시장에서 추가 수주도 기대된다. 1%대 최저 수준 불량률을 보장하는 기술력과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승용차, 트럭 등 다양한 차종의 안전벨트 버클 수주 물량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그는 "수출과 국내 수주 물량을 절반씩 균형을 맞추면서 운영 자금이 보충되면 연 매출 18억 원까지 달성할 것"이라며 "힘들게 버텨준 직원들과 똘똘 뭉쳐서 공장 운영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재명 기자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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