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이 관세평가분류원 세종 이전을 추진하며 혈세 171억원을 들인 후 텅 빈 청사만 남긴 과정은 관가 내부 시각으로도 의문 투성이다.
관세청의 무리한 추진 과정뿐만 아니라 기획재정부의 이전 예산 편성이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의 건설 허가 단계에서 전혀 제동이 걸리지 않은 것이 의아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김부겸 국무총리의 지시에 따라 20일 본격적으로 시작될 정부 조사에서는 관세평가분류원 직원들이 챙긴 아파트 특별공급뿐만 아니라 이전계획이 확정되기도 전에 청사 신축이 강행된 과정 자체도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관세청이 2015년 처음 관세평가분류원 세종 이전안을 추진할 당시, 관세청과 소속 기관 모두가 행정안전부의 '중앙행정기관 등의 이전계획' 고시(2005년)에 이전 제외 기관으로 명시된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관세청은 국민의힘 소속 권영세 의원에게 지난달 제출한 답변서에서 "부지 검토 및 예산 편성 당시 관세청, 행복청, 한국토지주택공사, 기획재정부 등 관련 기관 모두 행안부 고시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제부처의 한 고위공직자는 "2백억원에 가까운 청사 신축사업을 추진하는 담당자라면 청사 관리 담당부처인 행안부에 협의 대상인지를 명확히 확인을 했을 것"이라며 "관세평가분류원이 연구시설이라 행안부 협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관세청 해명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깐깐한 심사로 혈세 낭비를 막아야 할 기재부는 관세분류평가원 세종 이전이 행안부와 협의를 거친 것인지 확인하지 않고 2016년 8월 신축 예산을 2017년 예산안에 반영했다.
기재부는 관세청이 행안부와 협의를 마치고 예산을 요구한 것으로 판단하고 예산을 편성했다고 권 의원실에 답변했다.
기재부는 뒤늦게 올해 1월에야 국유재산관리기금 공용재산취득사업계획안 작성지침(2022년)을 고쳐 시설 예산을 요구할 때 행안부와 협의 결과서를 반드시 제출하라는 내용을 반영했다.
관세평가분류원 세종 이전안을 처음 추진한 관세청장은 기재부 세제실장 출신 김낙회 청장이며, 예산이 편성된 2016년 중반에는 천홍욱 청장이 재임했다. 천 전 관세청장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인사 개입에 관여한 의혹을 받은 인사다.
다른 정부부처 관계자는 "기재부의 신규 예산 심사는 매우 까다롭고, 반영이 되더라도 삭감이 일쑤"라며 "기재부가 관세청에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의외"라고 말했다.
당시 기재부 2차관을 지낸 송언석 의원(무소속)은 연합뉴스에 "예산안은 예산실장과 담당 과장 정도가 알 수 있다"며 관세평가분류원 이전 예산 편성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관세청은 2018년 행복청의 건축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행안부 고시를 인지하고, 행안부에 고시를 개정해달라고 요청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행안부는 관세평가분류원이 비(非)수도권 기관이어서 이전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므로 고시를 개정할 이유가 없다고 회신했다.
행복청은 행안부의 공문을 전달받고도 기재부와 협의를 거쳐 2018년 6월 관세청에 건축허가를 내줬다.
행복청은 "청사건물 신축 허가는 토지매입 등 건축법 제11조 구비조건을 충족하면 가능하다"며 "허가 과정에서 관세청으로부터 관계기관 협의 내용을 수령했으나 건축허가를 불허할 만한 요소는 없었다"고 국회에 답변했다.
관세청이 예산을 받아 토지를 샀기 때문에 청사 관리 담당부처의 반대에도 건축을 허가했다는 것이다.
권 의원실 관계자는 "기재부와 행복청은 행안부 고시가 개정되지 않았는데도 이를 몰랐거나 무시하고 건축 허가 협의를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행안부가 2019년에 다시 문제를 제기했으나 김영문 당시 관세청장은 정부법무공단과 법무법인 2곳에 자문해 3곳 모두로부터 관세평가분류원 세종 이전이 가능하다는 답볍을 받아내고, 건축을 계속 밀어붙였다.
검사 출신인 김 전 청장은 퇴임 후 21대 총선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으며 지난달 한국동서발전 대표로 취임했다.
/세종=우영탁 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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