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인공지능(AI) 기술을 겨냥해 국내 대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잇달아 대학과 손잡고 연구·개발(R&D)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존 가장 앞서가는 AI로 꼽히는 ‘GPT-3’를 표방하며 국내 최적화된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GPT-3은 기술력으로는 단연 최고지만 영어 기반이어서 우리말인 한국어로 정교한 답을 찾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산학(産學)이 공동으로 연구소를 세우는 등 협력 관계를 맺고 이른바 ‘초거대(Hyperscale) AI’ 개발에 나서고 있다.
24일 네이버는 카이스트(KAIST) AI 대학원과 ‘초창의적(Hypercreative) AI 연구센터’를 설립, 초거대 AI를 활용한 공동 R&D에 나선다고 밝혔다. 네이버와 카이스트 AI 연구원 100여 명이 참여하고, 3년간 수 백억 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예정이다.
초거대 AI는 최신 컴퓨팅 역량을 기반으로 막대한 데이터를 투입하고 원하는 답을 찾아내는 기술이다. 기존 AI가 특정 분야의 단순한 답을 내는데 집중했다면 초거대 AI는 고도화돼 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 얼굴을 인식하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뿐만 아니라 표정과 감정 등 맥락까지 읽어내 무엇을 원하는지까지 추론해낼 수 있다. 초거대 AI가 ‘인간 뇌를 쏙 빼닮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네이버가 KAIST와 함께 개발하기로 한 초창의적 AI는 초거대 AI를 기반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해 AI가 창작까지 해내는 기술이다. 주재걸 KAIST AI 대학원 교수는 “정해진 문제만 푸는 것에서 더 나아가 창의력이 요구되는 미술, 음악,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AI”라며 “초거대 AI보다 기술적으로 난이도가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네이버와 KAIST는 좋은 스토리와 창의적 아이디어가 있다면 누구나 고품질의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AI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KT(030200)도 지난 23일 KAIST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AI·SW(소프트웨어) 기술 연구소를 설립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대덕2연구센터에 세워지는 이 연구소는 연내 공식 출범할 계획이다. KT 직원과 카이스트 교수, 연구원 등 약 200명이 상주하며 초거대 AI 연구·개발을 한다. 네이버는 초거대 AI와 관련해서는 서울대학교와 함께 연구 센터를 설립한다. 센터에는 네이버와 서울대 연구원 100명이 투입된다. 3년간 연구비와 인프라 지원비 등 수 백억 원의 투자가 이뤄질 계획이다.
기업과 대학이 공동 연구소를 세우면서까지 AI 역량에 집중하는 이유는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해외 빅테크 기업에 맞서 더 이상 뒤처져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대로 가다간 AI 싸움에서 패배해 글로벌 기업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며 “벼랑끝에 몰렸다는 절박한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기업은 방대한 데이터와 최신 시설 등 인프라 측면에서, 대학은 교수와 학부생을 비롯한 석·박사 등 AI 전문 인력 등에 강점을 가지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유석영 KAIST 전산학부장은 “‘네이버냐 KT냐’, ‘KAIST냐 서울대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며 “한국 대 글로벌과의 싸움이고 모두가 다 힘을 합쳐 싸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현익 bee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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