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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김용진 "국민연금이 ESG 평가기준 직접 수립…룰메이커로 나설 것"

■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대담=김현수 경제부장

태스크포스 만들어 K-ESG 모델 구축, 투자 결정에도 적극 활용

1분기까지 4% 수익…해외투자 35%·대체 15%로 포트폴리오 조정

연금 개혁은 정파 떠나 논의 시급…신입 공채 확대해 인재도 육성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11일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남부지역본부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ESG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투자자들이 널리 활용할 수 있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 기준을 국민연금이 만들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ESG 경영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 단순 추격자에서 벗어나 룰을 만드는 데 직접 참여해 ‘국민연금 ESG 플러스 이니셔티브’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7~8개의 주제를 선정해 제각각인 ESG 평가 기준을 국민연금이 정리해나갈 겁니다.”

지난 2월 기준 860조 원의 기금을 축적해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올라선 국민연금공단의 김용진 이사장은 11일 서울 강남의 국민연금공단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제각기 흩어진 ESG 관련 논의를 모으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면서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기업의 ESG 경영에 정부가 규제 등을 마련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이어 “올 1분기까지 연금 운용 수익률이 4%에 달해 33조 원가량 수익을 올렸다”면서 “5년 안에 전체 기금 운용 중 해외 주식 투자를 35%, 대체 투자를 15%까지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300조 원을 넘어선 국민연금의 해외투자와 관련해 “오는 2025년에는 600조 원으로 2배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획재정부 2차관을 지낸 김 이사장은 정통 경제 관료 출신으로 공정거래나 기업 지배구조, 환경 등 ESG 같은 공공 영역의 문제 해결에 평생을 바쳐왔다. 그가 바쁜 일정을 쪼개 ESG와 관련한 ‘국민연금이 함께하는 ESG의 새로운 길’이라는 책을 출간한 것도 평소 그와 같은 이슈들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ESG는 인류의 보편적인 상식이었다”며 “최근 전 세계 투자자와 자본이 집중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미국 시장 조사 업체 블룸버그NEF는 지난해 전 세계 ESG 채권·대출 시장 규모가 약 827조 6,000억 원으로 2년 새 2배 이상 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ESG 경영을 잇따라 선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규제나 은행 대출 등의 압박 수단이 기업을 움직이게 했다면 지금은 경제·투자 메커니즘을 통한 자발적 생태계가 작동하는 셈이다.

김 이사장은 ESG 평가 기관에 따라 점수 격차가 큰 것을 현행 ESG 투자 체계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국민연금이 직접 나서기로 한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MSCI(모건스탠리 주가지수), FTSE(파이낸셜타임스 주가지수), DJSI(다우존스 지속 가능 경영지수)를 비롯해 국내에서도 여러 기관이 ESG 평가를 하지만 일관성이 떨어져 평가하는 곳과 수요자인 금융회사, 평가에 참여하는 기업 모두가 어려워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 기업의 ESG 등급이 평가 기관에 따라 4단계나 차이가 난다면 어떤 금융회사가 평가 결과를 믿겠느냐”며 “국민연금은 2015년부터 기업의 ESG 경영 심사 체계를 설계했고 국내 1,000여 개 기업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어 모두가 납득할 만한 체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11일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남부지역본부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ESG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국민연금은 ESG 심사 체계를 자체 투자에도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 올해부터 국내 주식 직접 운용 과정에서 ESG D등급 종목에 대해 벤치마크 대비 초과 편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실행하고 내년부터 위탁운용사 선정 시 책임 투자 정책 수립 및 지침이 있는 운용사에 가점을 부여한다. 아울러 해외 주식 및 채권 직접 투자 영역까지 ESG 평가를 적용한다. 앞서 지난 5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탈석탄 선언을 통해 국내외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에 대해 투자를 배제·제한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다만 정부의 ESG 개입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정부가 정책을 만들면 시장은 이를 규제로 인식하고 기업은 대책을 마련해 회피하게 된다”면서 “ESG만큼은 장기적인 전략으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야 하므로 이를 규제로 느끼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내년이면 기금 규모가 1,000조 원을 돌파하는 국민연금은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로 해외투자 여건이 극히 불투명했음에도 9.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2019년 11.3%의 수익률에 이어 지난해에도 10%에 육박하는 성과를 통해 2년간 쌓은 수익만 14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도 1분기 만에 3.94%의 수익률을 내 32조 7,000억 원을 벌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기다리는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 가속화하는 저출산·고령화 추세에 연기금의 고갈은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최근 출산율 급락 속에 연금 고갈 시기가 앞당겨진다는 관측으로 인해 2030 사이에서는 ‘과연 연금을 받을 수 있기는 한 건가’라는 불신감도 적지 않다. 김 이사장 역시 “인구구조도 문제지만 저성장·저금리로 기금 운용 수익도 줄어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다만 “기금이 설사 소진되더라도 국가가 책임지고 연금을 지급할 것”이라며 “국가가 존재하는 한 국민연금은 노후에 반드시 지급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제도와 관련해 “1988년에 처음 도입된 후 10년 뒤인 1998년에 첫 연금 개혁에 나서면서 ‘연금재정계산제도’를 도입해 5년마다 의무적으로 재정을 추계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도록 의무화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들어 4차 재정계산을 했고 이에 따라 정부가 네 가지 개선안을 내놓았다”며 “연금 개혁 문제는 정파 문제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인 만큼 하루라도 빨리 논의를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제도 개혁이 미뤄지면서 그는 연기금의 수익성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 이사장은 “연기금 운용의 핵심은 수익성과 안전성으로 시장의 흐름에 지나치게 미달하지도, 지나치게 초과하지도 않게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위험 자산을 확대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연금보험료 수입이 연금 급여 지출을 상회하는 2030년까지는 기금 수익 극대화를 위해 위험 자산 확대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그는 2026년까지 주식 50%, 대체 투자 15%, 채권 35%로 자산을 분배하고 50%의 주식 가운데 15%는 국내에, 35%는 해외에 투자하기로 했다. 국내 주식 비중이 3월 현재 20.5%에서 크게 줄어드는 셈이어서 일부 투자자들은 국민연금이 국내 증시에 악재를 만들고 있다며 반발하기도 한다.

김 이사장은 “현재 국민연금의 높은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이 시장에 부담으로 올 때도 있다”며 “국민연금이 가지고 있는 주식 역시 언젠가 현금화해야 할 때가 오는데, 지나치게 국내 시장 비중을 높이는 것은 시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3월 이탈 허용 범위를 2%에서 3%로 높여 국내 비중을 줄이는 과정에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며 “코로나19로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 안정적인 투자를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수익성 확대를 위해 김 이사장은 기금운용본부의 전문 인력 확충도 추진하기로 했다. 기금운용본부에서 투자 경력을 갖춘 운용역은 2015년 219명에서 2021년 326명으로 1.5배 이상 늘었다. 국민연금은 경력직 채용뿐 아니라 해외 투자 비중 확대에 발맞춰 신입 직원 공채도 늘려 잠재력 있는 젊은 금융 전문가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워낸다는 복안이다. 김 이사장은 “해외투자액이 지난해 말 304조 원에서 2025년에는 600조 원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우리나라에는 해외투자 및 대체 투자에 숙련된 인력 풀이 많지 않은 만큼 젊은 인재를 직접 채용하고 교육 훈련에 투자를 늘려 전문 인력으로 양성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운용직 경력 개발 프로그램도 새로 도입했다. 조직 적응에서 국내 직무는 물론 해외 직무 현장 훈련으로 이어지는 전문화된 교육과정을 통해 신규 인재를 투자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고 해외투자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해외투자를 담당하며 직접 해외 파트너와 사업을 기획·개발, 구조화하고 상품으로 만든 사람과 안 해본 사람의 차이는 크다”면서 “조인트벤처나 합작사에 국내 인력을 파견하고 해외 대형 금융회사에 단기 연수도 보내 기금운용본부와 한국의 금융 역량을 키우고자 한다”고 말했다.

◇He is··· △1961년 경기 이천 △1979년 청주 세광고 △1986년 성균관대 교육학과 △1986년 행정고시 30회 △1998년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 개혁기획 총괄 △2008년 기획재정부 혁신인사과장 △2012년 기재부 공공혁신기획관·대변인·사회예산심의관 △2015년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기획단장 △2016년 1월~2017년 6월 한국동서발전 사장 △2017년 6월~2018년 12월 기재부 2차관 △2020년 8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세종=우영탁 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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