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식하는 분들은 10루타 종목이라면서 HMM(011200)을 ‘흠(HMM)슬라’라고 부른다는데 저희는 ‘흠’자만 봐도 두렵습니다.”
물류업계의 한 관계자 말입니다. 치솟는 운임, 부족한 선복,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물류대란에 HMM(옛 현대상선)과 같은 해운선사들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10년 가까이 이어진 저가 운임, 선사 간 치킨게임을 벌인 결과 오랜만에 찾아온 호황인 셈입니다. 인생은 시소와 같다지요. 모두가 즐거울 수는 없는 법입니다. 반대편에 선 물류사와 화주들은 죽을 맛이랍니다.
“주문은 넘쳐나고 기존 장기 계약 물량으로는 부족해 스폿(단기 계약)을 쓰면 물류비용이 최대 8배까지 늘어납니다.” 대기업 A 사 관계자는 최근 유럽향 물류비를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답니다. 현재 1년 장기 계약 운임에 따르면 컨테이너 1기를 유럽에 보낼 때 150만 원이면 충분합니다. 문제는 장기 계약 외 추가 물량입니다. 스폿 운임에 프리미엄까지 붙습니다. 현재 유럽향 스폿 운임 약 600만 원에 프리미엄 100%까지 더하면 물류비용은 총 1,200만 원까지 치솟습니다.
14일 해운·물류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순부터 시작한 물류 대란이 악화되며 1년 장기 계약과 스폿으로 보내는 운임 차이가 무려 8배까지 벌어졌습니다. 물류비용의 바로미터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 역시 1년 사이에 3배 넘게 치솟았습니다. SCFI는 지난 11일 3,703.93으로 5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1년 전(1,015.33) 대비 3.65배 오른 수치입니다. 국내 수출 기업들이 주로 이용하는 유럽 노선 운임(6,335달러)은 6,000달러 벽을 깨고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습니다.
해상 물류비용이 급증하면서 기업들의 수익성은 급격히 나빠지고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기업 대비 원가율은 낮은데 운임이 치솟으니 이윤을 남기기 어려워져서입니다. 일부 업체들은 수출 포기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납기 지연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며 소비가 살아나자 상품 주문은 빗발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품을 들여오고 수출할 선박을 찾기 힘들어지면서 고객사에 적시 제품 공급을 약속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일부 수출 기업들은 대륙횡단철도, 항공 운송 등의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한 물류 담당자는 “해상 운임 폭등뿐 아니라 해외 항만과 내륙 운송까지 도미노처럼 적체되는 비상 상황”이라며 “하반기 실적에 직접적인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진을 생각하면 수출 포기가 맞는데, 계약을 지켜야 하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컨테이너선에 실어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대기업 A 사 관계자)
지난해부터 시작된 물류 대란이 수출 비용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며 기업들이 수출 자체를 고민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최악의 상황’이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점입니다. 해운 업계에서는 미국과 유럽 유통 업계가 연말 시즌을 대비해 본격적으로 재고를 쌓기 시작하는 3분기부터 물동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봅니다. 하반기로 갈수록 물류 대란이 더 악화돼 수출 주도의 우리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운·물류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본격화한 물류 대란이 최소 올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통상 하반기 물동량이 상반기보다 많은 데다 올해는 코로나19 보복 소비가 물동량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반면 컨테이너를 실어나를 선박은 빨라야 내년부터 투입됩니다. 컨테이너선의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은 부족한 현상이 최소 올 한 해 내내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코로나19 타격을 입은 미국 항구의 상황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1~2월 로스앤젤레스항·롱비치항의 근로자 중 확진자가 1,000명 이상 발생하며 항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가전 업계 관계자는 “컨테이너를 미국 항구에 허겁지겁 내리고 빈 컨테이너는 회수도 하지 못한 채 돌아오는 ‘공컨테이너’ 상황이 이어지며 선박뿐 아니라 컨테이너 수급난까지 심각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최악의 경우 이번 물류 대란은 올해를 넘어 내년까지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해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선사들은 향후 몇 년간 물동량이 줄 것으로 전망해 컨테이너선 발주를 줄였다”며 “그러나 예상과 달리 물동량은 급속하게 늘어난 반면 선박은 부족한 게 현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은 1억 9,447만 TEU에서 올해는 2억 632만 TEU, 내년은 2억 1,419만 TEU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수출 업체들은 손익분기점까지 위협 받는 절체절명의 상황입니다. 장기 계약한 물량은 기존에 계약한 금액으로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지만 추가 물량은 해당 시기의 스폿(단기 계약) 운임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스폿 운임은 명목상 요금일 뿐 실제 운임은 이보다 더 비쌉니다.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입니다.
최근 해운 업계에서는 화물량과 시기에 따라 스폿 운임의 최대 100%까지 프리미엄이 더해지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컨테이너선사들은 한 해 전체 운송 물량의 절반은 안정적 수익을 위해 장기 계약으로 채우고 나머지는 스폿 계약으로 합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1년 장기 운임 계약을 할 때만 해도 코로나19에서 이렇게 빨리 회복될 줄 몰랐다”며 “평년보다 낮은 물량으로 장기 계약을 했고 추가된 물량은 스폿 운임이 적용되는데 최대 8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하반기부터입니다. 하반기는 전통적으로 상반기 대비 물동량이 더 많습니다. 미국과 유럽 유통 업체가 추수감사절·블랙프라이데이·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창고에 재고를 쌓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월마트·카르푸 등 대형 유통 업체들은 연말에 팔 상품 재고를 3분기부터 비축하기 시작한다”며 “7월을 기점으로 연말까지 꾸준히 물동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올해는 지난해 한 해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소비 시장이 본격적으로 살아나면서 물류 수요가 더 폭발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수익성 회복이 시급한 기업들은 당장 공장 가동 여부를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각국이 인프라 투자에 나서면서 호황을 맞은 건설기계 업계가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해외 부품의 수급 문제를 면밀히 살피고 있습니다. 건설기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해상 물류 적시성이 50% 밑으로 떨어지면서 자칫하면 상품 조립 및 납기 일정에 차질을 줄 가능성도 있다”며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추가 물류 비용을 감당하고서라도 항공 물류로 부품을 공급받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철도운송을 찾는 기업들도 부쩍 늘었습니다. 올 1~4월 한국에서 출발해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거쳐 운송된 물량은 18만 3,000톤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26.2% 증가했습니다. 판토스 관계자는 “배터리·타이어뿐 아니라 기존에 철도운송을 사용하지 않던 고객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출 기업들이 철도운송을 찾는 것은 해상 운임이 치솟으며 대륙횡단철도 수송 비용과 차이가 사라져서입니다. 여기에 시간도 절감됩니다. 보통 TSR은 컨테이너선 대비 20일가량 빠릅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물류 대란이 언제쯤 끝날지 예상하는 게 무의미한 상황이라고 전합니다. 물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 초만 해도 연내, 늦어도 내년 초면 주요 항만의 적체가 풀리고 컨테이너 품귀 현상이 잦아들며 물류 대란이 잠잠해지리라 봤다”며 “그러나 미국 항만 적체가 풀리니 유럽에서 문제가 생기는 등 물류 적체를 심화하는 사건이 잇따라 생기니 이제는 예상하는 게 두렵다”고 하소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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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갑 기자 ga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