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상권의 중심이 서울 강북이었던 시절,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은 서울 압구정동에 대규모 백화점을 구상했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1971년 금강개발산업으로 출발해 슈퍼마켓과 울산 쇼핑센터를 통해 유통 노하우를 축적하면서 유통업의 미래는 백화점이란 걸 직감했다. 당시 압구정동은 온통 배나무 밭 허허벌판이었던 탓에 “웬 백화점”이냐며 수근 거린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정 명예회장은 유통업 진출에 탐탁지 않아했던 부친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설득하는 것이 첫 관문이었다. 그는 담당자조차 대동하지 않고 일본 백화점 성공 시대를 사례로 들며 정 회장을 설득했다. 그렇게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이 문을 열었다. 국내 백화점 강남 시대의 신호탄이었다.
창립 첫해 8,400만원이었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20조원을 달성하며 재계 순위(자산 기준) 21위에 올랐다. 정몽근 명예회장이 유통업 진출의 기초를 다졌다면 지난 2008년 회장으로 취임한 아들 정지선 회장은 대규모 투자와 10여건의 인수·합병(M&A)을 통해 유통에 이어 패션, 리빙·인테리어까지 사세를 넓히며 종합유통그룹으로 입지를 다졌다.
15일 창립 50주년을 맞은 현대백화점그룹이 14일 '현대백화점그룹 50년사'를 발간하고 '100년 기업'으로의 도약을 다짐했다. 정 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그룹 역사를 한 줄로 압축한다면 과감하고 열정적인 도전의 연속"이라며 "반세기 동안 축적된 힘과 지혜를 바탕으로 100년 그 이상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새로운 역사를 함께 만들어나가자"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업의 성장과 사회적 가치가 선순환할 수 있도록 사회공헌과 상생협력 활동을 진정성 있게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현재 유통, 패션, 리빙·인테리어 등 3대 핵심 사업에, 뷰티·헬스케어·바이오·친환경 같은 미래 신수종(新樹種) 사업을 더해 오는 2030년 매출 40조원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특히 미래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사업 중 그룹의 성장 전략(생활·문화)과 시너지가 예상되는 분야에 대한 투자와 인수합병(M&A)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현대백화점의 전신은 금강산업개발. '중동 건설붐'이 일었던 1971년 현대그룹 임직원들의 복지와 단체급식, 작업복 지원 등을 담당했던 소규모 업체가 백화점 오픈을 계기로 유통업에 뛰어들며 다양한 시도를 통해 성장을 거듭한 것이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은 거의 10년 단위로 신사업을 발굴하며 사업 다각화를 통해 퀀텀 점프의 시금석을 다졌다. 2000년에는 사명을 현대백화점으로 바꾸고 2001년 현대홈쇼핑을 설립하며 온·오프라인 유통사업의 양대 성장 축을 마련했다.
특히 현대백화점 그룹의 제2의 도약에는 2008년 취임한 정 회장의 결단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03년 총괄 부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2010년 '비전 2020'을 발표하면서 사업 확장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한다. 비전 발표 이후 백화점 6개, 아울렛 8개 출점 및 10여 건의 인수합병(M&A)를 추진한다.
정 회장은 또 2012년 여성복 업체 '한섬' 인수 과정에서 협상이 난항에 부딪히자 직접 정재봉 당시 한섬 사장을 만나 직접 담판을 지은 일화는 유명하다. 같은 해 가구업체 '리바트'(현 현대리바트)를 인수했고 2016년에는 면세점 사업에 진출했다. 2018년에는 종합 건자재 기업 '한화L&C'(현 현대L&C)를 인수하며 리빙·인테리어 사업을 강화했고 지난해에는 'SK바이오랜드'(현 현대바이오랜드)를 인수하며 뷰티·헬스케어 시장 진출의 기반을 마련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국내 유통업계가 대규모 구조조정의 진통을 겪고 있는 사이 현대백화점그룹은 유통을 넘어 국내 대표 종합생활문화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코로나19 파고 속에서도 경기도 남양주에 프리미엄 아울렛 스페이스원을, 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을 오픈했다. 올해 문을 연 미래형 백화점으로 불리는 '더현대 서울'도 정 회장이 진두지위한 작품으로 오프라인 유통의 미래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보리 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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