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만1,000여개 주유소를 회원사로 둔 한국주유소협회가 국내 정유 4사(SK에너지·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정유사들이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를 통해 알뜰 주유소에 일반 주유소 대비 리터 당 100원 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석유제품을 공급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이유에서다. 10년 전 알뜰 주유소 제도 도입 이후 주유소 업계 경영난이 심화한 가운데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절박함이 터져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친환경 자동차 보급 확대로 지속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유기준 한국주유소협회 회장은 14일 서울경제와의 전화 통화에서 “정유사들이 알뜰 주유소와 일반 주유소에 석유 제품 공급 가격을 차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불공정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유 회장은 “현재 공정위 제소를 위한 중앙회 차원의 논의를 진행 중이고, 의견이 정리되는 대로 제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협회는 지난 주 회장단 회의를 열어 이 같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뜰 주유소 제도는 공기업인 석유공사가 정유 4사를 대상으로 최저가 입찰을 실시해 두 곳을 선정, 가장 싼 값에 석유제품을 사들여 이를 알뜰 주유소에 공급하는 구조다. 정유사가 자영 주유소에 직접 석유제품을 공급하는 구조와 차별화 된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국적으로 알뜰 주유소는 1,241개가 있다. 전체 주유소에서 알뜰 주유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다. 지난해 기준으로 휘발유의 경우 알뜰 주유소는 일반 주유소보다 평균적으로 리터당 34.2원 저렴하고, 경유는 33.4원 싼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 가격이 리터당 100원 가까이 차이 나기 때문에 발생하는 차이다.
주유소 업계가 뿔이 난 것이 이 지점이다. 특정 사업자(알뜰 주유소)에만 공급 가격 혜택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공기업인 석유공사가 개입해 싼 값에 제품을 공급 받는 알뜰 주유소와 그렇지 않은 일반 주유소가 시장에서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주유소협회는 지난 2015년에도 이러한 이유로 석유공사를 공정위에 제소했지만 공정위는 “문제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상황이 이렇자 전북 지역 전체 자영 주유소 가운데 40%에 가까운 320여 곳은 지난 4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럴 바에야 일반 주유소를 전부 알뜰 주유소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회견 직후 알뜰 주유소 정책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청사로 달려가 알뜰 주유소 전환 신청서를 제출했다. 주유소 업계는 “항의성 단체행동”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와 석유공사는 알뜰 주유소를 통해 주유소 간 가격 경쟁을 촉진하고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리터당 20~30원 싼 값에 석유제품을 공급하는 알뜰 주유소가 있으면 주변 일반 주유소도 가격을 내릴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소비자 후생에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2016년 낸 보고서는 정부 의도와 정 반대 결과를 담고 있다. 해당 보고서는 “알뜰 주유소로 전환한 사업자의 가격은 전환 이후 리터당 15~17원 영구적으로 감소했다”면서도 “반면 인근 경쟁 주유소들의 가격 인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결론 냈다. 당시 보고서를 쓴 홍우형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강조하는 소비자 후생만큼 공급자 후생도 중요하다”며 “정부 개입으로 가격 측면에서 자영업자들에게 사업상 불이익이 발생한다면 이는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점도 자영 주유소 사업자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정유사들이 직접 운영하는 직영 주유소들이 전기차 시대에 맞춰 복합화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기존 경유·휘발유를 공급하는 자영 주유소들의 위기감이 적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알뜰 주유소 도입 전 3~4% 수준이던 주유소 영업이익률은 지난 2018년 1.8%, 2019년 2.5%까지 떨어졌다.
이와 별개로 정유 4사 단체인 대한석유협회는 최근 외부 기관에 알뜰 주유소 제도와 관련한 연구 용역을 발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르면 다음 달 중 연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연구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업계 입장을 조율해 정부에 개선 방안을 요구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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