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이 ‘버추얼 연구개발(R&D)’이라는 새로운 파운드리 사업 모델을 제시했다. 칩 설계 기업과 파운드리가 맞춤 공정 개발을 위해 끈끈하게 협력하는 구조다. 퀄컴·엔비디아 같은 대기업 외에도 중소 팹리스와도 적극 협력해 고객사를 확보해나간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최 사장은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정기 인사에서 파운드리사업부 수장으로 선임됐다. 지난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화상회의’를 진행했을 당시 삼성전자 대표로 참석한 인물이기도 하다.
최 사장은 16일 온라인으로 열린 세계적인 반도체 학술대회 ‘VLSI 2021’ 기조연설자로 나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 전략과 비전을 밝혔다.
최 사장은 “요즘 시대에 맞는 파운드리는 칩 제조뿐만 아니라 초기 개발부터 생산단계까지 고객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유연한 기술을 구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버추얼 R&D라는 새로운 콘셉트의 사업 모델을 제안했다. 기존 파운드리 모델은 팹리스 기업이 칩 설계를 완료하고 나면 파운드리가 자사 공정을 활용해 반도체를 만들어 주는 형태였다. 하지만 버추얼 R&D는 제품 디자인부터 테스트·패키징까지 모든 칩 제조 과정에 관여해 고객사를 지원하는 모델이다.
미리 만들어 놓은 공정으로 고객사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맞춤’ 공정을 제공하기 위한 협력에 적극 나선다는 아이디어다.
최 사장은 삼성 파운드리와의 협업이 미국 퀄컴·엔비디아·AMD 같은 대형 칩 설계 기업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전략이 단순히 큰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파운드리와의 협력 의지,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기업 규모가 작든 크든 협업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50% 이상 점유율을 확보한 대만 TSMC를 바짝 뒤쫓으며 업계 1위를 노리고 있다. 그간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 등 선단 공정 도입으로 대형 고객사 확보에 주력해왔지만 이번 전략으로 세계 곳곳의 잠재력 있는 고객사를 끌어들여 시장 입지를 확대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읽힌다.
새로운 협력 전략과 함께 첨단 칩 제조를 위한 하이엔드 공정 개발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최 사장이 내세운 삼성의 대표적 파운드리 공정 기술은 첨단 3나노 ‘MBC펫(MBCFET)’이다. 칩 면적 축소와 기능 고도화를 동시에 노리는 이 기술은 올해 개발 완료, 내년 양산을 목표로 한다. 최 사장은 삼성전자의 MBC펫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앞으로 수 세대(multiple generation)에 걸쳐 MBC펫이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최 사장은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 동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레거시 파운드리 수요 급증으로 극심한 공급 부족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강해령 h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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