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현재 사정은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시진핑 체제가 얼마나 위기에 몰려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첫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난 2013년에 시작한 일대일로는 시 주석의 역점 사업이자 중국몽을 구현한 글로벌 프로젝트다.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는 중국몽의 해외 확장판인 일대일로 사업의 향배는 시 주석의 거취와 맞물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시아·아프리카·유럽 등을 아우르는 인프라 투자 사업인 일대일로가 처한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부채 함정’이라는 비난에 이어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일대일로에 대항한 새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인 ‘B3W(Build Back Better World)’를 꾸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과거 실크로드 교역에서 일대일로를 구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대일로 대상 국가들은 처음에는 환영 일색이었다. 자금 부족으로 개발 사업을 벌일 수 없는 상황에서 조건 없는 ‘차이나머니’가 도움이 된 덕분이다. 중국은 특히 서방국가들처럼 인권이나 민주체제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많은 권위주의 국가들도 안심을 했다.
하지만 저개발 국가들이 중국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서 저당으로 잡힌 인프라 시설이 중국으로 넘어갔다. 일대일로 참여가 중국에 단단히 코를 꿰이는 사달로 탈바꿈한 것이다. 실제 독일 싱크탱크인 킬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대일로 참여국의 대중 부채는 3,800억 달러(약 424조 원)에 달한다. 그 결과 동유럽의 소국 몬테네그로의 대중 부채 비율은 8%에서 46%로 급증했고, 무슬림 국가 최초로 대만과 단교하고 일대일로에 적극 동참했던 파키스탄도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저널리스트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최근 워싱턴포스트(WP) 칼럼에서 “시 주석은 공산당과 자신을 위해 권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투쟁적이고 예측 불가능하고 종종 감정적인 외교 노선을 추구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중국이 국제 무대에서 힘들게 쌓아온 스마트하고 안정적이며 생산성 높은 플레이어라는 명성은 사라지고 말았다”며 “이런 중앙 집중적 내치와 공격적인 외교는 마오쩌둥 시대를 떠올리게 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이 신장위구르에 대한 인권 탄압, 홍콩의 민주주의 체제를 허물고 미래 기술 패권을 위해 인재와 기술 빼간다는 이유로 중국에 비판을 날을 세우는 데 비해 신흥국의 반중 여론 중심에는 일대일로가 있다는 얘기다.
물론 중국도 일대일로 비판 등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당장 지난해부터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에 참가한 국가들에 코로나19 백신을 우선 제공하고 있다. 특히 홍콩의 빈과일보를 사실상 폐간시키는 등 중국의 홍콩 언론 장악도 노골화되고 있다. 바로 중국에 유리한 여론 조성을 위한 중국의 노림수다. 주바오량 중국국가정보센터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대일로 참여국 일부에서 채무 상환을 미뤄 중국 대외투자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며 “저우추취(해외투자)와 인진라이(투자유치)를 병행하는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통해 B3W를 일대일로에 대항마로 내놓음으로써 반중 사업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오는 2035년까지 40조 달러(약 4경 5,000조 원)를 투자해 중·저소득 국가의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라 일대일로와의 격전이 불가피하다.
중국 입장에서는 일대일로를 포기할 수 없다. 글로벌 금융 정보 업체 레피니티브(옛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중국은 일로와 연계돼 100여 개국의 철도·도로·항만 등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 총 2,600건에 3조 7,000억 달러(4,200조 원, 지난해 상반기 기준)를 투자했다.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약 1경 7,000조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대략 1년 GDP의 4분의 1을 쏟아부은 것이다. 이는 공산당 100주년을 맞은 시 주석으로서는 일대일로가 난관에 봉착할 경우 정치·경제적 타격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기디언 래크먼은 “그동안 중국은 일본, 한국 등이 걸어온 수출 주도형 산업화 모델을 따라 성장했다”면서 “미국이 중국의 첨단기술을 견제하고 반중 동맹을 조직하는 등 새로운 지정학적 환경에 놓여있는 만큼 앞으로 중국의 부상이 지속되려면 새로운 독자적인 성장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사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등 중국의 막무가내식 외교는 앞서 일대일로에 대한 큰 성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중국을 건드리면 가차 없이 맹공을 퍼붓는다’는 의미로 이를 ‘전랑 외교’라고 부른다. 일대일로를 통해 중국이 역사상 가장 판도를 넓힌 상황에서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래크먼 칼럼니스트는 “미국과 적대적인 상황에서 앞으로 중국 경제가 이를 견딜 수 있을지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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