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기존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 국한됐던 ‘양심적 병역거부’ 사유 범위를 확대하면서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 개인의 신념·신앙 등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관을 병역거부의 근거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논쟁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24일 내린 정 모 씨에 대한 무죄 판결이 기존 양심적 병역거부 판례와 다른 점은 개인적 신념 등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앞서 1심은 2017년 현역 입영 통지서를 받고도 입영하지 않아 기소된 정 씨에 대해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병역거부자 처벌의 예외 사유인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2심은 “형사 처벌을 감수하면서 입영을 거부했고, 36개월간 교도소 또는 구치소에서 대체복무하겠다는 의지도 나타냈다”며 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정 씨의 성장 과정, 학교 생활, 사회 경험 등을 내밀하게 살펴본 결과였다. 정 씨의 법정진술과 소견서 등에 따르면 성 소수자인 그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남성성을 강요하는 문화에 거부감을 느껴왔고, 이에 기독교 신앙에 의지하게 됐다고 한다. 대학교 입학 후에는 반전주의 및 페미니즘 활동에 참여했고, 병역거부에 대한 확신을 키워왔다. 대법원도 이번 사건이 기존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사안과는 구별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비(非)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현역 입영을 거부한 사례에 무죄가 확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이 그동안 병역법 처벌 규정에서 예외로 정한 ‘정당한 사유’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에 대해서만 적용됐다. 대법원은 지난 2018년 11월 병역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상고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첫 판단을 내놨다. 그러나 정당한 사유라는 개념이 모호해 상당수의 반대 의견(4명)이 나왔다. 이는 질병이나 재난 발생 등 객관적인 사정에 한정해야 하며, 개인적 신념이나 가치관 등 주관적 사정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이 무죄 판결로 양심적 거부 사유를 확대한 데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해당 판례가 남용될 수 있다는 걱정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반전에 대한 체계적인 신념 체계가 없는 활동들도 병역 거부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며 “페미니스트, 성 소수자인 점을 내세운 병역거부 시도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병역거부 시 3년간 대체복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반대급부가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강력한 신념 없이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36개월간 교도소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사례는 없을 것”이라며 “일전에 종교적 신념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를 대법원이 처음 인정했을 때도, 이를 이유로 병역 기피가 늘 것이란 우려가 나왔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아모 기자 amo9@sedaily.com, 이진석 기자 lj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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