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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탄소중립 시대의 화학물질 관리 정책





윤제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원장

탄소중립이란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온실가스를 거의 발생시키지 않은 사회경제적 운영을 한다는 의미인데 탄소 중립 시대의 화학물질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이룩한 모든 사회경제적 발전은 화석연료 기반 과학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화학물질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화학산업 생태계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에서 화학산업은 세계 5위의 규모로 사회경제적 영향력이 매우 크고, 국내 제조업 중 온실가스 배출량이 두 번째로 많은 업종이기도 하다.

1. 그런데 국내 화학물질의 관리는 화학사고에 따른 사회적 이슈를 계기로 강화하고 발전을 하였다. 특히, 구미 불산 사고 및 가습기살균제 사건 등은 국민들에게 익숙한 사건들이며, 이 사건들로 인해 한층 높아진 화학물질에 대한 사회적 우려는 화학 3법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학물질관리법,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을 마련하고 개정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2. 화학물질 관리는 화학물질로 인한 사람과 환경에 대한 피해를 줄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화학물질이 개발되고, 위해성이 알려지면서 지속해서 관리가 강화되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성을 담보하기에는 미흡하다. 2020년 발간된 유럽의 환경 상태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 유통되는 약 100,000종의 화학물질 중 70,000여 종은 아직도 유해성과 노출에 대한 명확한 규명이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부터 국내에 유통되었던 1톤 이상의 기존화학물질 등록이 2030년까지 완료될 예정으로, 화학물질 전반에 대한 유해성 및 위해성 정보가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사후적 관리 시스템과 부족한 정보는 현실적으로 일상생활과 작업장 속에서 마주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사회적인 우려로 표출되고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수행한 2019년 국민환경의식조사에 따르면 생활 속 화학물질로 인한 오염 부문에 대한 높은 불만(60.7%)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3.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사회의 화학물질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에서는 화학물질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모든 유해화학물질에 대해 중앙에서 모니터링하고 컨트롤하기 어려운 한계를 지니고 있다.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 제도의 정비 및 강화뿐만 아니라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패러다임과 사고 전환을 통해 산업계 등 이해관계자의 보다 능동적인 참여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4. 따라서 국내 화학산업의 파급효과와 국가 기간 산업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고려하면, 단순히 화학물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규제뿐만 아니라, 화학물질 관리와 규제는 기술혁신을 통해 지속 가능성 및 자원 효율성의 향상으로 녹색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 또한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

5. 이러한 흐름은 2050 탄소 중립을 추구하는 최근의 EU 그린딜에서도 찾을 수 있다. EU 그린딜에서 화학물질분야는 올 3월 오염 제로 달성 전략을 채택하고, 2024년까지의 연도별 이행 사항도 마련하였다. 특히, 화학물질 전략의 주요 추진 방향에서 화학물질의 제조 단계 이전부터 전생애 주기에 걸쳐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화학물질 개발을 위한 혁신을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한 기술적,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EU에서 화학물질 전략의 기본 개념으로 강조하고 있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화학에서 시작된 패러다임이다. 최근 재조명되고 있는 지속 가능 화학은 1990년 미국 환경청이 사전오염예방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한 녹색화학과 동일한 개념이며, 에너지 효율적임과 동시에 위해가 없는 화학물질 및 공정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과학기술 패러다임이다. 이는 탄소중립이 지향하는 바와 궤를 같이하며 탄소중립 추진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실현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U REACH 또한 지속가능 화학의 개념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최근 OECD 등 국제기구도 지속가능 화학을 기반으로 친환경적인 화학물질, 제품 및 공정 개발을 추진하고 순환 경제 체계와의 연계를 도모하고 있다.

6. 이러한 개념은 국내 화평법상에도 반영되어있는 개념이며, 관련 연구 및 개발 사업 또한 상당 기간 진행된 바 있다. 정부에서도 녹색화학 관리체계 기반 마련 노력을 시작하였다. 다만, 국내에서 지속 가능 화학 또는 녹색화학 개념은 특정 분야 또는 사업 단위로 적용 범위가 한정되어 정책화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존재한다.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화학물질 분야의 녹색 전환이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 화학이 화학물질의 전 과정에 걸쳐 근간을 이루는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그린뉴딜 추진에 있어 화학물질 분야를 주요 정책의 한 축으로 설정하여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속 가능 화학을 토대로 한 관리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유럽 그린딜과 같이 지속 가능 화학을 뿌리내리기 위한 구체적인 추진전략과 단계별 로드맵을 수립하는 등 선명한 목표와 계획을 제시하는 것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3월 정부는 ‘탄소중립 기술혁신 추진전략’을 마련하였으며 10대 핵심기술 중 하나로 석유화학산업 원료 및 공정의 저탄소화를 위한 연구개발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향후에는 화학물질 분야 전반에 대한 저탄소화와 함께 안전성 또한 담보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 화학을 토대로 개발 전략 간 연계와 확대를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7. 지속 가능 화학 개념을 실현하는데 존재하는 재원의 제약과 기술적 한계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과 화학물질 오염의 동시 저감(co-control)에 따른 공편익(co-benefit)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린 뉴딜에서 핵심적 목표로 설정되어 있는 탄소 저감과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해소에 대한 공편익 관련 기술 및 정책을 참고하여 이를 보다 넓은 범위의 화학물질로 확장하는 방식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8. 또한 화학물질 및 제품의 전 과정에서 안전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일 화학물질뿐만 아니라 다양한 화학물질의 다중 노출 및 그 외 환경유해요인과 사회경제적 요소를 모두 고려한 복합 위해성 평가 체계의 구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간 다부처 협력 사업 등으로 단편적으로 추진된 바 있는 매체통합위해성평가 등에 필요한 평가 요소를 추가하여 범부처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관련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9. 지속 가능 화학의 전 과정 확대 차원에서는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순환 경제 개념과 지속 가능 화학의 비즈니스 모델 개념을 연계하는 방향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 이를 위해 OECD 및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등 국제기구에서 활용하고 있는 화학물질 임대(chemical leasing) 모델 또한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화학물질 임대는 “화학물질 산업의 초점을 화학물질 판매량 증가로부터 가치를 추가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서비스 지향적 비즈니스 모델”로 정의할 수 있다. 즉, 제조사와 서비스 제공업체가 화학물질의 전 과정에 대한 관리 책임을 지며, 소비자는 화학물질 자체보다는 그 기능 및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함으로서 화학물질의 효율적 소비를 도모하고 위해를 저감하는 것이다. UNIDO는 2004년부터 Global Chemical Leasing Programme을 운영하고 정기적으로 화학물질 임대 모델의 성공적인 적용사례나 관련 연구를 선정하여 Global Chemical Leasing Award를 시상하고 있다.

10. 마지막으로 2020년 7월 정부가 발표한 그린뉴딜을 추진함에 있어 화학물질 분야의 녹색 전환이 순조롭게 안착하기 위해서는 포용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를 포괄할 수 있는 리더쉽을 발휘해 화학물질 분야의 녹색 전환으로부터 얻어지는 사회적 가치를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스타트업 등을 대상으로 화학물질의 안전성 및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한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중소기업 및 사회적 취약계층이 부족한 인프라 때문에 최신 유해화학물질 저감 기술 및 전 과정 모니터링에 활용되는 ICT 기술 등을 통한 녹색 전환의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정책 설계 단계부터 세심한 검토와 지원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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