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인쇄회로기판(PCB) 수요가 늘고 있으나 주요 설비 부족으로 공급 확대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삼성전기 2분기 콘퍼런스콜)
반도체에 이어 PCB 등 각종 부품을 만드는 장비 시장이 사실상 쇼티지(공급 부족) 사태를 맞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제조 업체들의 생산 라인 증설이 이어지는 데 반해 핵심 장비 공급 물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각종 생산 라인 증설을 검토 중인 삼성전자·삼성전기 등 삼성 계열사들까지 장비 공급망 관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각종 전자 기기 수요 폭증과 패키징 기술 고도화로 반도체용 기판 업계의 장비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지난달 28일 열린 2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고급 반도체용 기판 수요 증가로 관련 라인 증설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하면서도 이에 필요한 ‘설비’가 부족하다고 언급했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고다층·대면적 기판 수요 증가와 함께 주요 설비 부족에 따른 공급 확대가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비대면 시대에 노트북·태블릿PC, 서버용 반도체 등 수요가 늘면서 PCB 시장은 초호황을 맞은 데 반해 이를 생산할 장비 입고는 점점 더뎌지고 있다. 기판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PCB 회로를 만드는 필름 식각 설비는 생산 라인에 입고되기까지 2년 이상 소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조 장비 부족 문제는 PCB뿐만이 아니다.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도 칩 제조사 간 고급 장비 쟁탈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기가 대표적이다. 초미세 회로 모양을 EUV로 찍어내는 이 장비는 연간 40대가량 생산되는데 삼성전자 등 반도체 회사들이 안정적인 물량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ASML 외에 주요 반도체 장비사들도 장비 공급 부족과 이에 따른 가격 상승으로 ‘역대급’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사 램리서치는 2분기에 13억 1,600만 달러(약 1조 5,1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 뛴 액수다. 문제는 반도체와 PCB 장비 모두 미국·일본 등 해외 업체가 주도권을 쥐고 있어 우리 업체들로서는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국가 전략이 뒷받침된 장비 산업 육성이 시급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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