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지난 5일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한 후 뒷말이 무성하다. 초안에서는 탄소 중립 사회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전환, 산업, 수송, 건물, 농축수산, 폐기물, 흡수원, 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CCUS), 수소 등 9개 부문의 세부 내용을 포함했으며 석탄 발전 여부, 전기차·수소차 비율, CCUS와 흡수원 확보량 적용 방법 등 3개 안으로 차별화했다.
방향성에는 공감하나 각론에 대해서는 분야별로 비판적인 반응이 강하다. 경제·산업계는 과도한 목표이며 추진 과정에서 산업 경쟁력이 악화할 것을 우려한다.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환경 단체는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놓았다. 배출량이 0인 한 개의 시나리오로만 추가 논의를 하자는 주장이다. 시나리오 작업에서 소외된 관련 전문가들은 기술 개발 가능성과 소요 예산, 국민 후생 비용 증가에 대한 설명이 없는 함량 미달 로드맵이라고 비판한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치환되는 발전 부문에만 비용이 수십조, 수백조 원이 필요하다는 전망까지 등장하고 있다.
시나리오에서 제시한 태양광·풍력 발전을 포함해 CCUS, 수소 환원 제철, 배터리 전기차, 수소 연료전지, 탄소 중립 연료(e-fuel) 등 많은 기술들은 모두 이상적이지만 보조금 없이 상용화하기 어렵고 규모의 경제 실현 시점을 단정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도전들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해 효율 개선, 신재생에너지, 연료 전환, 원자력 발전, CCUS 순으로 중요한 기술을 제시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일반화된 분류법으로 볼 때 우리의 탄소 중립 시나리오는 균형을 잃고 있다. 원자력은 빼고 신재생에너지를 주로 강조한 무리한 목표를 세우고 부문별 온실가스 감축량을 계산하다 보니 경직되고 어설픈 느낌이다. 해외 시나리오도 정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감축 수단에 대한 차별이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북반구의 경제 선진국들도 신재생에너지 발전만으로 오는 2050년 전력 수요 감당은 어렵다고 인정한다. 이에 유럽과 일본의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서는 전기화에 더해 수소와 전기를 이용한 액체(PtL)·기체(PtG) 연료를 산업·수송·건물에 감축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2030년 전망에서 독일 자체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이용해 생산한 e-fuel보다 모로코에서 발전한 전기를 이용할 경우 이산화탄소 발생이 5분의 1로 줄어든다는 분석을 발표한 바 있다. 탄소는 우리에게 필수적인 생활 원소이고 당장 없앨 수도 없다. 단지 기후변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나 메탄 발생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탄소 중립으로 가는 경로도 중요하다. 탄소 중립을 외치고 있지만 지난달 폭염으로 인한 전력난에 석탄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를 최대한 가동했던 현실을 고려하면 탄소 포집 및 활용 기술이나 원자력 안전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는 것이 온실가스 저감을 실현하고 경제성 있는 탄소 중립 기술을 선점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시나리오 초안 발표 이틀 뒤인 7일 탄소중립시민회의가 출범했다. 탈원전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 대토론을 거치던 방식을 연상하게 한다. 폭넓은 의견 수렴을 위해서라지만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밀도 있는 검증은 부족하다. 너무 서두르는 느낌이다. 탄소 중립을 향한 대장정에 환상적인 목표를 정하는 일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기술 수준 평가, 기술 혁신 투자, 비용 평가 및 추산, 산업과 사회 영향을 고려한 공정 전환, 국제적 교역을 고려한 탄소 중립 성능 계산이 지금이라도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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