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50대를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예약 시스템이 수차례 먹통이 됐다. 이 시스템은 한 중소기업이 개발해 정부에 납품한 것이다. 정부는 서둘러 LG CNS, KT, 네이버 등 정보통신기술(ICT) 대기업들에 도움을 요청했다. 백신 접종 예약 시스템 구축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기업들이다. 정부가 지난 2013년부터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 대한 대기업 참여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병목 현상의 원인을 찾아내 해결하고 병원 분배 기능 등을 덧붙여 현재 별 문제 없이 접종 예약이 진행되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대기업의 사업 참여를 제한한 정책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관련 정책들이 시행된 지 수년이 지난 현재 도입 취지 달성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 SW의 경우 2013년부터 8년째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업에 대기업 참여가 제한되고 있다. 현재는 소수의 중견 기업들이 정부 발주 사업을 사실상 과점하고 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이들이 따낸 공공 SW 사업을 재하청받고 있다. 기존의 재하청 및 저마진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디지털 뉴딜 추진으로 다양한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정부 부처들도 사업 발주를 주저하고 있다. 시스템 품질뿐 아니라 유지·보수 등에서도 기존 기업들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탓이다. 또 중소기업들이 국내 사업에만 공을 들이다 보니 공공 SW의 해외 수출은 급감했다. 2010년대 초만 해도 국내 ICT기업들은 콜롬비아 교통카드 시스템 등 수천억 원 규모의 해외 정부 발주 SW 사업을 따냈지만 2013년 이후 사실상 전무해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 국가 발주 사업에 참여하려면 입찰 참여 기업이 자국에서 비슷한 사업을 수주해 성공한 경험이 필수”라며 “2013년 이후 8년간 굵직한 정부 사업을 수주한 이력이 없다 보니 해외 입찰 시장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고자동차·드론처럼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의 진출을 막은 산업도 건강하게 발전할 기회를 놓쳤다. 중고차 시장은 2013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된 후 정보 비대칭 문제 등으로 사기·납치 등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낙후됐다. 드론 시장은 국내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이 다국적 기업들에 밀려 사실상 외국계 기업들에 내줬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취지 자체는 좋지만 현재는 중견 기업 몇 곳만 파이를 잠식해 경쟁이 약화되고 있다"며 "큰 틀은 유지하더라도 대기업들과 벤처·중소기업들이 기술력 제고를 전제로 컨소시엄 형태 등으로 함께 참여하는 쪽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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