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시가총액 2위인 SK하이닉스(000660)가 네이버(NAVER(035420))에 추월당하기 일보 직전이다. 반도체 업황에 대한 비관이 극에 달하면서 최근 시총이 15조 원이나 증발한 여파다. 꼭 1년 전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에 2위 자리를 내줬던 굴욕이 또다시 눈앞에 나타난 것으로 한국 산업의 지형 변화를 보여준다는 해석도 나온다.
1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4.74% 하락한 10만 500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시총은 73조 1,642억 원으로 최근 6거래일 동안 14조 9,240억 원 쪼그라들었다. 가까스로 ‘코스피 넘버2’ 자리를 지켰지만 안심하기는 어렵다. 3위 네이버(72조 3,580억 원)와의 격차가 8,062억 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날 네이버는 1.01% 내린 44만 500원에 거래를 끝냈지만 SK하이닉스가 워낙 깊은 조정을 받은 탓에 2위 자리를 넘볼 수 있게 됐다.
올 초만 해도 격차가 43조 6,000억 원에 달해 네이버가 SK하이닉스를 턱밑까지 추격하리라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플랫폼과 반도체 산업의 성장성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면서 네이버가 빠른 속도로 따라붙었다. 탄탄한 이익 체력 개선 속에 카카오와 플랫폼 1위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네이버 주가는 연초 이후 50.6% 뛰었지만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사이클에 대한 비관의 채도가 점점 짙어지면서 주가 곡선이 아래쪽으로 무너졌다. 둘 사이 시총 격차는 지난 5월 말 32조 9,100억 원→6월 말 24조 2,400억 원→7월 말 10조 6,900억 원으로 좁혀졌고 급기야 이날 1조 원 안팎까지 줄었다.
시총 2위 주인공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대 주도 산업을 보여준다는 상징성 때문이다. 휴대폰 보급과 인터넷 투자가 활발했던 21세기 초반에는 SK텔레콤(2000~2003년), 중국의 경제 개방으로 전방 산업이 성장했던 2000년대 중후반에는 POSCO(2007~2010년),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시대가 열렸던 2010년대 초반에는 현대차(2011~2015년)가 2위에 올랐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호황 사이클 진입과 함께 2016년 말부터 2위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산업의 중심이 제조업에서 부가가치·수익성이 중요한 업종으로 옮겨지면서 플랫폼·바이오·배터리 기업이 2위를 탐내고 있다. 실제 지난해 8월 말 한때 SK하이닉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2위 자리를 빼앗기기도 했다. 다만 이익 규모의 격차가 상당해 2위 쟁탈전은 두고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역대 새 시총 2위 기업은 기존 기업의 순이익을 넘어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SK하이닉스의 순이익을 넘어설 수 있는 기업이 나오는지 여부가 2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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