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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코인예치사업 현황도 몰라…뒷북 규제땐 '뱅크런' 불보듯

[암호화폐發 '머지 사태' 터진다…모호한 특금법에 투자자 혼선]

  예산·인력 부족 이유로…거래소에만 규제 집중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어" 업계 자발적 신고 회피

  뒤늦게 법 적용 받으면 불법 영업으로 전락 위기





수조 원대의 고객 자산(암호화폐)을 보유한 가상자산은행들이 불과 한 달여 뒤면 불법 업체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대규모 혼란이 우려되지만 금융 당국은 예산과 인력 부족을 이유로 사실상 방치한 상태다. 암호화폐거래소에는 신고 요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컨설팅까지 마쳤지만 가상자산은행에 대해서는 현황 파악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상자산은행을 가상자산사업자로 봐야 하느냐’는 기본적인 질문에 “업체들이 당국에 문의해보면 개별적으로 신고 대상인지 알려주겠다”는 식의 황당한 답변이 나올 정도다.

금융 당국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업계도 자발적인 신고를 회피하고 있다.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사한 서비스여도 수익을 내는 방식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암호화폐 자동 투자 서비스인 ‘헤이비트’를 운영하는 업라이즈는 금융 당국에 문의한 결과 가상자산사업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이충엽 업라이즈 대표는 “법률 자문을 받았을 때 위험 소지가 있다고 해서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질문했다”며 “FIU에서 고객의 암호화폐를 직접 수취하는지 여부를 따졌는데 헤이비트 서비스의 경우 자산은 고객 계좌에 그대로 있고 알고리즘을 통해 소프트웨어적인 지시만 내리는 것이라 해당이 안 된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업체들은 금융 당국에 직접 질의하는 것보다 법률 자문 등을 통해 자의적으로 판단하며 움직이고 있다. 암호화폐 자산운용사 델리오는 홈페이지에 특정금융정보법 대상이 아니라고 명시했다. 정상호 델리오 대표는 “금융 당국이 거래소 중심으로 특금법을 보고 있고, 아닌 경우에는 가볍게 보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변호사들이 델리오 서비스는 특금법의 직접적인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자문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1차는 받았고, 나머지 단계를 준비 중이지만 조금 더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샌드뱅크를 운영하는 이현명 디에이그라운드 대표는 “사업적으로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해 ISMS 인증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도 “상황을 지켜보면서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가상자산은행에 대한 당국의 모호한 입장이 지속되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암호화폐를 예치하면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고객을 끌어모은 뒤 ‘먹튀’하는 미신고 가상자산은행들이 양산될 수 있다. 아직까지 주요 가상자산은행 가운데 지급 불능 사태가 벌어진 곳은 없지만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 시장의 특성상 고객들이 일시에 대규모 인출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 감시망을 피해 과도한 인센티브로 고객을 끌어모으다 뱅크런으로 무너진 ‘제2의 머지포인트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금융 당국이 제대로 된 감시를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데 블록체인 업계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벌어질 수 있다.

당국이 뒤늦게 가상자산은행을 가상자산사업자로 인정해도 현장의 혼선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다수 업체들이 신고를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법 적용을 받으면 불법 업체가 양산되기 때문이다.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마감일 전에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거래소 규제에 특화된 특금법으로 암호화폐 예치 사업자를 규제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하기보다는 업계의 특성을 고려해 가이드라인을 만든 뒤 이를 따르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암호화폐를 이용한 서비스라고 해서 무조건 가상자산사업자를 달아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단 변호사는 “산업이 태동 단계에 있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과중한 시설과 비용 부담이 있는 ISMS 인증을 갖추도록 하는 것은 블록체인 분야에서는 아예 스타트업은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동일한 독소 조항”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최소한 블록체인 분야가 아닌 타 정보통신망서비스업자에 대한 기준 정도로 사업 규모나 이용자 수를 고려해 인증을 요구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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