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공유 감사(shared audit)’ 제도가 국내에선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영향으로 빅 4 점유율이 높은 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영한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20일 한국회계학회가 개최한 ‘영국 회계개혁 추진과 시사점’ 웹 세미나에서 “우리나라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논(non) 빅4 회계법인도 상장사를 감사할 기회를 갖고 있다”며 “공유감사제도가 중견법인의 감사품질을 제고로 이어질지는 실증적 의문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유 감사란 두 회계법인이 한 회사를 같이 감사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프랑스·네덜란드 등에서 시행해오고 있다. 지난 2016년 백화점 체인 BHS, 2018년 건설사 카릴리언 등에서 대형 회계 스캔들이 잇달아 터지면서 영국에서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에선 빅4가 대형 상장사를 감사하는 경우 중소형 감사법인도 같이 참여하도록 하는 ‘관리형 공유감사’를 추진하고 있다.
빅4의 독과점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FTSE350 기업 중 88%가 빅4의 회계감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회계기준(IFRS) 선도 국가로 통하는 영국에서 공유 감사 카드를 꺼내들면서 국내 당국·학계의 관심도 쏠렸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은 대체로 공유 감사의 국내 도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미 2018년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라는 강력한 제도를 통해 빅 4와 논 빅4간 감사 ‘분산’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5~10위권 중견 회계법인의 상장사 감사 비중은 36%로 전기(24.7%)보다 11.3%포인트 올랐으나 1~4위 회계법인의 경우 같은 기간 이 비율이 38.2%에서 31%로 줄어들었다.
송병관 금융위 기업회계팀장은 “우리나라는 직권지정제나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통해 형평성을 중시하는 측면이 있다”며 “굳이 공유감사제를 검토할 필요는 크지 않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우리나라는 ‘빅 4의 시장 지배’라는 전제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앞서 공유 감사제를 도입했던 프랑스도 시계열로 보면 빅 4 집중도는 계속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공유 감사를 통한 빅 4 집중도 완화가 무조건 ‘저비용 고품질’의 회계감사 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상장사를 두 회계법인이 맡다 보니 업무 중첩도는 높아지는데 기업 입장에선 비용을 이중으로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한 회계법인이 기업의 모·자회사를 같이 감사하는 비중이 올라갈수록 감사 품질은 높고 감사보수는 낮은 경향이 나타났다”며 “반면 공유감사를 도입했던 프랑스·네덜란드의 경우엔 제도 도입 후 감사보수가 1.5배 이상 올랐고 감사품질은 큰 변화가 없거나 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산업군에서 시장 점유율이 높은 회계법인이 감사를 잘 한다는 것”이라며 “우리 입장에선 논 빅4를 큰 회사로 만들고 품질관리를 잘 할 수 있도록 좋은 제도(신외부감사법)를 도입한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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