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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도로·철도 따라…사람들은 연대한다

■대서울의 길

김시덕 지음, 열린책들 펴냄

개발 정책이 갈등 부르지만

"도시는 선"…행정단위 넘어

길 따라 이어진 지역들 끼리

소속감 느끼고 정체성 형성





경춘선 길목에 자리잡은 경기도의 소도시 퇴계원은 전국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읍이다. 원래 이곳에 육군 제2군수사령부 예하부대가 주둔했으나 지난 2016년 경북 성주시에 사드(THAAD)를 배치하면서 땅을 맞바꿔 이전했다. ‘비어있는’ 군부대 부지는 별내역이 있는 서쪽 신도시와 동쪽 왕숙 신도시 사이에 낀 채 아직도 용도가 결정되지 않았다.

“퇴계원역 주변에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길과 블록이 경춘선 철로를 따라 형성돼 있는 한편, 군부대에 속했던 것으로 보이는 ‘퇴계원 관사’와 그 밖의 기지촌 등의 특징적 블록들이 확인됐습니다. 철도와 군사라는 두 가지 요소가 결합했을 때 어떤 도시가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흥미로운 지역입니다.”

기록을 연구하는 사람은 역사학자, 유물을 연구하는 이는 고고학자이니 도시 그 자체를 역사적 기록으로 읽어내며 연구하는 이는 ‘도시 문헌학자’로 불릴 만하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가 앞서 출간된 ‘서울 선언’과 ‘갈등도시’의 맥락을 잇는 도시 답사기, ‘대서울의 길’을 새롭게 내놓았다. 표제의 ‘대서울’은 수도권을 더 넓게 확장한 개념으로, 책에서는 철도와 도로를 통해 연결된 강원도와 충청도 일부 지역까지 포함한다.

옛 금곡역사. /사진제공=열린책들


김 교수는 “전근대 한반도의 도시 화석이 도로라면, 근대 한반도의 도시화석은 철로”라고 말한다. 철도가 놓이고 역이 생기면 마을이 번성했다. 지금도 ‘역세권’의 영향력은 유효하다. 철도와 도로를 아우르는 그 ‘길’을 통해 수도 서울의 정치·경제·문화적 영향력이 확장됐다는 점을 저자는 고대 페르시아 사막의 지하 용수시스템인 ‘카나트’에 빗대 설명한다. 카나트 시스템에 의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흘러가듯 서울로부터 주변 농업 지역으로 도시화가 퍼져갔다는 뜻이다.

20세기 초 일본 제국주의가 군사·경제적 목적으로 건설한 철도는 한반도 수탈의 수단이었던 동시에 역전마을의 형성을 이끌었다. 경부선 성환역이 개통되면서 식민지 시기에 번성한 천안시 성환읍이 대표적이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승리를 거둔 지역이다 보니 일본인 이민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저자는 과거 성환 신사(神社)가 있던 언덕 주변에 지금도 남아있는 일본식 가옥, 경부선 열차를 따라 이곳에 정착했을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집 등지를 걸으며 살핀다.1963~2004년에 한강 이북의 서울 교외 지역을 순환하던 교외선의 장흥역도 한때 잘 나가던 역전마을이었다. 과거의 영화를 보여주는 상점과 정미소 등이 있고, 마을 면사무소 앞에는 식민지 시기에 활동한 조선인과 일본인의 송덕비가 놓여있다.



퇴계원역 인근의 퇴계원 관사 단지. /사진제공=열린책들


오래된 소도시의 아련한 풍경이 그리움의 정서를 자극할 법도 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의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도시 발전의 과정 속에서 불거진 ‘갈등’이다. LH 직원들의 투기 사건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시흥시 과림동의 모갈마을을 비롯해 구리시 담터마을, 헌릉로 희망대 공원 주변 신흥 2구역, 김포선의 오쇠동 등 도로와 철도를 따라 도착한 곳에서 저자는 도시 개발의 충돌 현장을 목격했고 이를 촘촘히 기록했다. 경춘선 폐선 구간의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 뿐 아니라 GTX 신설 철도 노선을 유치하려는 지역 간 경쟁도 치열하게 펼쳐진다.

또한 저자는 분단에 의한 실향민이 아니라 신도시 개발과 같은 국가 개발 정책에 의해 고향을 잃은 사람들을 ‘제자리 실향민’이라 부르며 어루만진다. 지난 1986년 포천군으로 ‘쫓겨난’ 상계동 지역 빈민들이 그랬다. 오늘날 천보 마을에 정착한 그들은 정착 직후 20년 간은 옛 고향을 잊지 못해 ‘상계 마을’이라 스스로 불렀다. 평택시에 캠프 험프리스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고향을 떠나 정착한 두릉지구 주민들은 손수 공적비를 세웠고 국가의 뜻에 따라 이주한 사연과 고향에 대한 애틋함을 새겨 넣었다.

“도시는 선(線)이다”라고 선언한 저자는 “개개인은 기존의 면(面)으로 설정된 행정 단위에만 충성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도로와 철도를 따라 선적으로 이어지는 지역들에도 소속감을 느끼고 그곳 사람들과 느슨하게 연대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느 길에 사는가에 따라 정체성과 연대감이 형성된다. 궁극적인 책의 물음은 도시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이며,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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