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누구도 대한민국에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가 작동되고 있다고 믿기 어렵습니다.” 권영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는 30일 서울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집값 폭등과 심각한 소득·자산 양극화를 초래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40점의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수요공급법칙을 거스른 어떤 경제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시장 친화 정책으로의 전환을 촉구했다. 권 대표는 여당이 밀어붙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법이 작동된다면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법안 철회를 주문했다. 그는 ‘조국 사태’로 등을 돌린 민심을 거론하면서 “문 대통령이 국민의 신뢰를 잃은 가장 큰 이유는 언행불일치”라고 지적했다. 차기 정부의 과제에 대해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 나라의 기틀을 다질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면서 노동·교육·연금 개혁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 4년여 동안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점수를 매긴다면.
△집값 안정을 장담했지만 집값은 폭등했고 일자리 창출을 내세웠으나 청장년층의 중추적 일자리는 감소했다. 또 소득 양극화와 자산 양극화는 더 심각해졌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2기’를 표방하면서도 당시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경제를 시장 자율에 맡기는 최소한의 유연함조차 갖추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은 누구도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가 작동되고 있다고 믿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노무현 정부에는 100점 만점에 60점을 줬지만 문재인 정부는 40점의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한 정권인데 왜 더 심각해졌나.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통해 소득 양극화를 완화시키겠다고 했는데 정반대 결과를 낳았다. 임금·고용 구조를 개혁한 다음에 최저임금에 손을 댔어야 했는데 구조 개혁은 전혀 없이 최저임금을 확 올려버리는 바람에 알바생과 일용직 근로자들의 대량 해고와 소득 감소를 초래했다. 어설픈 소득 주도 성장 정책 때문에 고용 피라미드의 최저층에 속한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 개혁이 시급한 것 아닌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비정규직 양산이 구조화됐다. 선진국에도 비정규직이 많지만 그 가운데 전문가나 프리랜서로 불리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나 비정규직이 될 수 있는 상황인 만큼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이 작동할 수 있게 노동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귀족 노조’로 불리는 대기업의 막강한 노동 권력이 정치집단화돼서 기득권을 양보하려 하지 않는 데 있다. 거대 노총의 비호 아래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는 노동계가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조속한 노동 개혁이 없다면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하다.
-연금 개혁 역시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연금 개혁은 ‘가장 인기 없는 정책’으로 불릴 정도로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개혁을 시도하지 않았나. 정치인들이 인기 영합 정책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미래의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정책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부동산 정책 앞에서는 대통령과 관계 장관을 포함한 모두가 겸손했어야 했는데 오만했던 탓이 크다. 유능하지도 못하면서 ‘부동산 정책은 자신 있다’는 허언을 거듭하며 집값 폭등을 유발했다. 결국 올해 4월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뒤에야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해 사과했다. 경제학에 ‘구성의 오류’라는 게 있다. 가령 풍년이 들어 농산물 수확이 많으면 농민에게 좋을 것 같지만 가격 폭락으로 되레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정책이 어려울 수밖에 없고 수많은 변수가 작동하는 부동산 정책은 더욱 그렇다.
-그래도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선의’는 평가해줄 만하지 않은가.
△아니다. 외려 가장 조심할 것이 선의를 가졌으므로 시장이 따라올 것이라는 맹신이 더 나쁘다. 다수결의 민주적 방법론에 기초한 사회적 선택으로는 가장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수급 문제와 심리 예측을 포함한 제약 요인이 많기 때문에 정책의 부작용이 발생하면 즉각 치유하고 차선의 대책을 내놓아야 힌다. 그러나 정치 논리에 매몰된 당국자들이 계속 “돌격 앞으로”를 고수하며 문제를 키웠다.
-임대차 3법의 후유증이 매우 크다.
△전월세 공급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임대차 3법을 시행한 것이 패착이다. 게다가 전월세 공급 확대를 위해 임대사업자에게 주던 혜택을 갑자기 줄여버렸다. 정부 정책을 따랐을 뿐인 임대사업자들을 마치 집값 폭등의 주범인 양 누명을 씌운 것도 문제이지만 이로 인해 가뜩이나 부족한 물량을 씨가 마르게 만들어버렸다. 물론 전세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해 세입자가 한 번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은 좋다. 하지만 임대차 계약 기간 4년이 지나고 나면 높아진 전셋값을 피할 수 없다. 새 임대차법 시행 전에 4억 원대이던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불과 1년 새 7억 원대로 뛰었다. 임차인들은 하소연할 곳도 없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현 정부는 참으로 무책임하다.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나.
△시장 친화적 공급 위주 정책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진심으로 집값 안정을 바란다면 아파트 재건축을 죄악시하는 생각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수요공급법칙을 거스르는 어떤 경제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경제학 역사 250년을 통해 증명됐다.
-더불어민주당이 각계의 반대에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 법안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권력자가 언론 통제 수단으로 악용할 우려가 있으므로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 “가짜 뉴스에 대한 피해자 구제법”이라고 주장하지만 모두 허튼소리다.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언론 중재 장치는 이미 갖춰져 있지 않은가. 언론사에 부당한 징벌을 가하고 언론인들에게 자기 검열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을 저버리는 것이다. 언론중재법이라고 포장돼 있지만 사실 언론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법이다.
-그렇다면 언론재갈법을 어떻게 해야 하나.
△언론 자유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말이 진심이었다면 여당이 강행 처리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전체주의국가로 만들겠다는 속셈이 아니라면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여당이 국내외 언론 단체들과 법률 전문가들의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언론 재갈법’을 졸속으로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어떤 정부였나.
△점잖게 말해 ‘용두사미(龍頭蛇尾) 정부’,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양두구육(羊頭狗肉) 정부’였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만기친람(萬機親覽) 행태를 보이면서 청와대 중심의 강력한 정부를 표방했다. 유능하고 잘 하기만 한다면 정책 집중력과 추진력이 강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는데 아쉽게도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공감하겠지만 현 정부의 청와대 참모들이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재라고 보기 힘들다. 문 대통령부터 외골수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현 정부의 인재 기용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현 정부 들어 여야 합의도 없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급 인사는 무려 33명으로 이명박 정부 17명과 박근혜 정부 10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니 야권에서 ‘오만과 독선의 정권’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인재 풀이 너무 협소하고 도덕적으로 ‘내로남불’이 심각할 뿐 아니라 발탁된 인물들이 실력이 모자란다. 청와대의 말을 잘 듣는 장관들만 골라 뽑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아닌지 의문이 든다.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서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나.
△언행불일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제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관련된 문제들을 모르고 임명했다가 뒤늦게 알게 됐다면 즉각 정리하고 국민에게 사과했으면 될 일인데 ‘조국에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다. 겉으로는 국민 의사를 존중하는 것처럼 항상 말을 하더니 결국 여론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문 대통령을 국민이 신뢰하기 어렵게 됐다.
-임기 말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문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 욕심을 버리고, 국민 앞에 겸손한 태도로 국정을 마무리해주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더 이상의 외교 참사는 없어야 한다. 동맹 외교를 충실하게 다져 미래 세대에 국방이 튼튼한 나라를 물려줘야 한다.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고, 어떤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공정과 정의에 입각한 지속 가능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음 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음으로써 영원히 존속할 수 있도록 나라의 기틀을 다질 지도자가 필요하다. 성장 잠재력을 재충전할 수 있도록 노동·교육·연금 개혁 등을 추진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우리에게 길게 잡아도 10년 이상은 남지 않았다. 차기 대통령의 책무가 막중하다.
/문성진 논설위원 hnsj@sedaily.com
He is…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림대 재무학과 교수와 경희대 국제경영 전공 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뉴욕주립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장·중앙위원회 의장을 지낸 뒤 경실련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재무학회 편집위원장, 한국파생상품학회 회장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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