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지난 7일 전고체 배터리로 달리는 전기차를 공개하자 업계에서는 일제히 “신선한 충격”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올 7월 개막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전고체 배터리 자동차를 공개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도요타가 최소한의 시제품도 선보이지 않자 이들의 기술 개발 수준에 의구심을 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반 만에 도요타가 “세계 첫 전고체 배터리 장착 프로토타입 자동차로 정식 번호판도 받았다”고 밝히자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의 지형을 뒤흔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K배터리’ 3사로서는 중국의 저가 공세와 일본의 차세대 기술력을 동시에 이겨낼 확실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전고체 배터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따로 만나 개발 상황을 논의할 정도로 관련 업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차세대 배터리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주력 생산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도 개발을 완료해 상용화까지 수십 년이 걸린 점을 고려하면 전고체 배터리 양산 시점을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일본의 2차전지 기술력이 뛰어난 것은 맞다”면서도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것과 이를 지금의 리튬이온 배터리처럼 대량 생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게 형성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격 경쟁력은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경쟁에서 핵심 요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중국이 리튬이온보다 에너지 밀도를 낮춘 리튬인산철(LFP)을 넘어 핵심 소재를 리튬이 아닌 나트륨으로 교체한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시장에 들고 나온 것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특히 대표적인 저가 배터리 생산 업체인 중국 CATL이 10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생산 라인 증설에 나서며 한국 기업들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됐다.
일본과 중국의 전방위적 공세에 부딪힌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가격은 낮추고 성능은 개선한 차세대 배터리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전자종합기술원은 이미 지난해 1회 충전에 800㎞를 주행하는 전고체 전지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삼성SDI가 이달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에서 밝힐 로드맵에 따르면 리튬이온 배터리인 6세대 배터리는 10분 충전으로 700㎞의 주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전고체 배터리인 8세대 배터리는 1회 충전으로 900㎞ 이상을 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업계에서는 10분 충전에 800㎞ 이상 주행거리가 나와야 차세대 배터리로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해외에서도 배터리 기술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어 경계심을 늦출 수는 없다. 유럽특허청(EPO)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해 발표한 배터리 특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고체 배터리의 국제특허패밀리(IPF)는 2014년 87개에서 2018년 211개로 5년 새 2.5배가량 늘었다. 국가별 비중은 일본(54%)이 가장 많고 미국(18%), 한국(12%)이 그 뒤를 이었다.
한편 리튬이온 배터리를 주로 생산해온 국내 업체들이 현재 구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성 높은 대안은 기존보다 성능을 높인 차세대 리튬이온 배터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기업들이 공개한 향후 배터리 사업의 방향도 이와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니켈·코발트·마그네슘·알루미늄으로 구성된 NCMA 양극재를 적용한 배터리를 내년 1월부터 테슬라에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니켈과 코발트·망간의 비율을 8 대 1 대 1로 섞은 양극재를 적용한 NCM811 배터리를 양산하고 있다. 삼성SDI도 니켈 함량이 90% 가까이 되는 NCA양극재를 쓰면서 원가는 20% 낮춘 젠5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젠5는 BMW 전기차에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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