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2030년 산업 부문 탄소 배출 감축률을 현재 대비 13% 수준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탄소 감축에 따른 충격을 우려해 전체 감축률(최대 40%)의 3분의 1로 낮췄지만 현재 탄소 감축 기술 수준으로는 생산량을 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전 세계적인 탈(脫)탄소 추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배출량 감축을 서둘러야 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그간 쌓아온 산업 경쟁력을 경쟁국에 내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11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 등은 최근 2030년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 관련 논의를 벌였습니다. 탄소 배출을 지난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하도록 한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지난달 31일 국회를 통과한 데 따른 후속 조처입니다. 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탄소중립법 시행령에 적시할 전체 탄소 배출 감축률과 부문별 감축률을 함께 논의했습니다.
정부 논의 안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체 탄소 배출 감축률은 2018년 대비 35~40% 수준으로 검토되고 있다. 산업과 발전·수송을 포함한 사회 전 분야에서 2030년까지 2억 5,466톤 이상의 탄소를 절감해야 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산업 분야의 감축률은 12.9~14% 수준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감축 규모는 최소 3,360억 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단일 업종 기준 탄소 배출이 가장 많은 철강 업체의 감축률은 2.8% 이상, 정유화학은 10% 이상 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산업계는 NDC 상향 조정에 따라 감산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철강업계는 글로벌 경제 성장세와 맞물려 2035년까지 철강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합니다. 하지만 탄소 배출을 감축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터라 NDC가 설정되면 증산은커녕 기존 생산량까지 줄여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조경석 한국철강협회 전무는 “용광로에 투입하는 스크랩 비중을 높이는 생산 방식을 조기에 도입해 탄소 배출을 일부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한국 철강 업체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달성하고 있는 터라 감축 규모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는 화석연료를 주로 사용하는 정유화학 분야에도 10%대 감축률을 책정했는데 친환경 연료 전환이 적기에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유화학 업계 역시 감산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산업 분야 최대 경쟁국인 중국은 탄소 배출을 점진적으로 줄이겠다는 입장이라 산업계의 부담이 특히 큽니다. 한국 제조 업체가 국가 탄소 배출 총량에 발목을 잡힌 사이 최대 경쟁국인 중국이 투자를 늘려 경쟁력 격차를 좁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주중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최대 탄소 배출국인 중국은 2030년까지 현재보다 18% 이상 탄소를 더 배출할 예정입니다. 전 세계적인 탄소 감축 압력에 맞춰 2060년 탄소 중립 달성을 공표했지만 이행 과정에서 탄소 감축으로 자국 산업의 성장세가 꺾이는 일은 피하겠다는 것이 중국의 방침입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 최고 에너지 효율을 갖춘 우리 제조 업체의 가동률이 떨어지면 우리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중국 등이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면서 국내 업체의 빈자리를 메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선제적인 탄소 감축으로 새로운 환경 규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탄소 배출에 미온적이라면 유럽연합(EU)뿐 아니라 미국도 수입 상품에 대한 탄소세를 도입할 것”이라며 “국내 산업계가 당장 피해를 당할 수는 있지만 글로벌 탄소세가 도입됐을 때를 대비해서라도 일찌감치 감축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배터리와 수소 전기차 등 미래 산업을 선제적으로 육성할 기회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탄소 감축에 따른 득실을 정밀하게 따져 감축률을 신중하게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정부는 논의를 서둘러 매듭지으려는 데 급급한 모습입니다. 정부는 이달 내 NDC 상향안을 마련해 탄소중립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박호정 한국자원경제학회장은 “NDC 목표는 선언적이거나 권고적인 성격이 아니므로 구체적인 기술 로드맵이 제시돼야 한다”며 “목표의 적절성에 대해 산업계 의견도 함께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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