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가계 부채 총량 관리를 내년 이후까지 지속하되 대책의 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인다고 밝혔다. 시중은행들이 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목표치를 거의 다 채워 NH농협은행에 이어 추가로 대출을 중단하는 은행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금융 당국이 현 관리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10월 초·중순에 발표될 추가 가계 부채 대책에 차주의 상환 능력 평가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들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27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경제·금융시장 전문가들과의 간담회’에서 “(가계 부채) 총량 관리의 시계를 내년 이후까지 확장하고 대책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강도 높은 조치들을 지속적·단계적으로 시행해나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고 위원장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계 부채 문제가 오랜 기간 누적 확대돼온 만큼 그 관성을 되돌리는 과정이 불편하고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일관된 정책 의지를 가지고 선제적으로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앞서 금융 당국은 올해 전 금융권 가계 부채 증가율 목표치를 5~6%로 제시하고 업권별로 설정한 목표치를 넘기지 않도록 하는 총량 관리를 적용하고 있다.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으로 대출 열풍이 불면서 은행들의 대출 관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7월 NH농협은행이 목표치를 초과해 일부 대출 상품의 취급을 전면 중단했다. KB국민은행은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에 육박하면서 29일부터 전세 자금 대출과 집단대출 한도를 대폭 축소하고 대환대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하나은행 역시 대출모집법인 6곳 중 3곳이 당초 할당받은 대출한도를 넘겼다. 대출모집법인은 은행과 대출모집 위탁계약을 맺고 은행과 대출자를 연결해주는 법인을 뜻한다. 대출한도를 넘긴 법인들은 10월까지 전세대출, 주택담보대출 등의 영업을 중단한다. 하나은행은 이들 법인 외에 영업점, 비대면을 통해 대출을 정상적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는 추가 중단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다. 지난 24일 기준 하나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이 4.78%로 목표치에 근접한 탓이다. 농협은행의 대출 중단으로 대출 수요가 다른 은행으로 몰리면서 추가로 대출을 전면 중단하는 은행들이 나올 가능성은 높아졌다.
은행의 이 같은 대출 축소 및 중단으로 실수요자들의 불편이 커지면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금융 당국은 내년에도 이 방식을 확대 적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고 위원장은 “올해 목표는 그간 6%대에서 관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입장에는 변함없다”며 “일부 은행에서 나름대로 관리 방안을 했는데 다른 은행으로 확산될 수 있는 등 은행 차원에서도 가계 부채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계 부채의 추가 대책은 다음 달 초·중순에 발표된다. 금융 당국이 차주의 상환능력 평가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조기 확대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고 위원장은 “(추가 대책은) DSR과 관련한 내용일 수도 있다”며 “앞으로 상환 능력 범위 내에서 대출이 이뤄지는 관행이 이뤄지도록 제도적 방안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상환 능력을 초과하는 대출을 받아 변동성이 큰 자산에 무리하게 투자하는 것은 자칫 ‘밀물이 들어오는데 갯벌로 들어가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그간 우리가 익숙해져 있던 저금리와 자산 시장 과열 상황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각 경제주체가 직시할 필요가 있다”며 경각심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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