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000210)그룹이 미국의 고부가 석유화학 업체인 크레이튼을 2조 원에 인수하며 지난 1939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빅딜을 성사시켰다. 올해 1월 지주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정비한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2년 반 만에 3세 경영을 가속화하며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을 석유화학 사업에서 찾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승부수로 읽힌다. DL의 전신인 대림산업은 건설 명가로 국내외에서 명성이 높지만 석유화학 사업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는데 이번 투자로 그룹의 명실상부한 양대 축이 됐다는 평가다.
올 초 지주사 체제를 구축한 DL(옛 대림산업)은 DL이앤씨(375500)가 건설을, DL케미칼과 DL에너지가 각각 석유화학과 에너지 부문 자회사를 보유하는 중간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 2019년 초 그룹을 총괄하게 된 이 회장은 지배구조를 정비하면서 지주사인 DL을 통해 DL케미칼의 성장 전략을 적극 지원했다. DL은 올 6월 DL케미칼이 단행한 4,5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이번 크레이튼 인수에 발판을 마련한 바 있다.
DL케미칼이 인수해 100% 자회사로 둘 미국 크레이튼사는 폴리머와 케미컬 2개 사업부로 구성돼 있으며 미국과 유럽 등지에 13개의 생산 공장과 5개의 연구개발(R&D)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총 매출액은 15억 6,300만 달러(약 1조 8,500억 원), 조정 상각 전 영업이익은 2억 6,200만 달러(약 3,100억 원)를 기록했다.
크레이튼의 폴리머 부문 주력 제품은 스타이렌블록코폴리머(SBC)로 미국과 유럽 시장점유율 1위다. SBC는 위생용 접착제와 의료용품 소재, 자동차 내장재, 5세대(5G) 이동통신 케이블 등에 활용되는 첨단 기술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아울러 크레이튼은 소나무 펄프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정제해 화학제품을 만드는 최대 규모의 바이오 케미컬 회사다. 바이오 케미컬 생산능력은 연 70만 톤으로 친환경 연료와 고기능성 타이어 재료, 친환경 접착제 등의 소재를 생산하고 있다.
DL케미칼 관계자는 “이번 인수로 단숨에 미국과 유럽의 1위 SBC 제조와 최대 규모의 바이오 케미컬 회사로 자리매김했다”며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외형 확장을 통해 글로벌 석유화학 선도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DL케미칼은 크레이튼이 보유한 800개 이상의 특허를 활용해 핵심 소재의 국산화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그간 석유화학 신소재는 소수의 선진국이 주도해 해외 기술·수입 의존도가 높았는데 이 회장은 전통 화학 전문 업체인 크레이튼과 DL의 화학 사업 노하우를 결합해 원천 기술들을 추가 확보하고 투자 확대로 신소재 사업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대림산업 시절 두 차례 해외 석유화학 사업 확대를 시도했다 고배를 마셨던 이 회장은 2019년 크레이튼의 카리플렉스(합성고무) 사업부 인수를 성사시키며 이미 교두보를 확보해놓고 있다.
DL케미칼은 또 올 6월 여수 석유화학단지에 1,500억 원을 투자해 미국 렉스턴과 합작법인을 설립, 친환경 접착 소재를 생산하는 사업에도 닻을 올린 바 있어 이번 클레이튼 인수로 세계 20대 석유화학 회사로 성장한다는 이 회장의 비전이 한층 가시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상우 DL케미칼 부회장은 "클레이튼 인수로 핵심 기술의 국산화와 함께 고성장세를 이어가는 아시아 시장에 대한 투자 확대도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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