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통화·금융정책 수장들이 한목소리로 ‘가계대출 억제’를 강조한 배경은 가계 부채가 위험 수준에 다다른 상황에서 자칫 실물경제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급등 속 가계 부채 문제는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정도로 커졌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과 중국 헝다그룹 부동산 부실 문제 등 리스크가 확대됐다.
정부는 내년 가계대출 증가율을 4% 이내로 묶기로 하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과 함께 가계대출 총량 관리, 전세자금대출 규제 등 쓸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총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가계 부채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집값 급등인 점을 감안하면 섣부른 규제로 실수요자만 옥죄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따른 영세 기업과 취약 계층의 이자 부담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선별적인 재정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고승범 금융위원장, 정은보 금융감독원장 등은 30일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해 가계 부채 관리 대책을 10월 중에 발표하기로 했다. 가계 부채의 빠른 증가 속도가 실물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이다. 국내 주요 리스크로도 부동산과 가계 부채 등 유동성과 연계된 현안을 꼽았다. 특히 경제회복 흐름 속 돌출한 악재에 경계 심리도 드러냈다. ‘회색 코뿔소(지속적 경고로 이미 알려진 위험 요인을 무시해 더 큰 위기에 빠진다는 의미)’ 같은 위험 요인들을 조기에 제거하지 않으면 위기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가계 부채는 코로나19 이후 ‘영끌’ 열풍과 맞물려 급격히 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올해 초부터 가계 부채 증가율을 5~6% 정도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가계 신용 증가율은 올해 1분기 9.5%, 2분기 10.3% 등으로 크게 웃돌았다. 전(全)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율도 6월 9.7%, 7월 10.0%, 8월 9.5% 등으로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도 104.9%로 주요 30개국 중에서도 다섯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지난해부터 가계대출 증가세와 주택 가격 상승세가 크게 확대된 것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정부와 한은이 금융 지원과 기준금리 인하에 나선 영향이 적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은행의 대출 공급 여력을 확대하면서 기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등의 효과가 크게 떨어졌다. 기준금리 인하로 풍부한 시중 유동성이 각종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관련 대출도 늘어났다.
이러한 금융 불균형에 대응하기 위해 한은은 지난 8월 기준금리를 한 차례 인상한 데 이어 연내 추가 인상을 준비하고 있다. 29일 서영경 한은 금융통화위원은 대한상공회의소 세미나에 참석해 “8월 기준금리 인상에도 통화정책이 여전히 완화적”이라며 추가 인상이 필요한 이유를 강조했다. 한은은 8월 금리 인상에 따른 영향 등을 꼼꼼하게 살핀 뒤 오는 11월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큰데 경제 상황만 뒷받침된다면 10월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내년 3월 이 총재의 임기가 종료되기 전인 내년 1월이나 2월 추가로 금리를 올릴지도 관심사다.
금융권에서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조기 확대 방안이 거론된다. 금융위는 내년 7월부터 총대출액 2억 원 초과 시, 2023년부터는 1억 원 초과 시 차주별 DSR 규제를 적용하기로 했는데 이를 앞당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수요 대출 성격이 강한 전세자금대출마저 가계 부채 대책에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미 한은은 전세자금대출 실태 파악에 나섰다.
하지만 전세자금대출은 무주택 서민의 주요 자금 조달처인 만큼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조이면서 실수요자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또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취약 계층의 이자 부담으로 신용 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정·통화·금융의 정책 조합인 ‘폴리시믹스’가 효과를 내려면 취약 계층 지원 등 정부 대책도 필요하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경기회복과 함께 금융 불균형 완화를 위해 거시·재정·금융정책을 조화롭게 운용해나가기로 했다”라며 “경제·금융 상황에 대한 인식 공유와 정책 조율을 위해 4자 회동을 공식·비공식적으로 보다 자주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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