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에 글로벌 공급난까지 덮치며 원·달러 환율이 1년 3개월여 만에 최고치인 장중 1,200원을 돌파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리스크 확대로 안전 자산 선호 심리가 확산하면서 당분간 달러 강세, 원화 약세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국내 수출 기업의 경우 해외로부터 들여오는 원자재 비중이 높아 환율 상승에 따른 수익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환율의 대외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필요한 경우 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4원 20전 오른 달러당 1,198원 80전에 거래를 마치며 연중 최고점을 경신했다. 이는 1,201원 50전으로 마감했던 지난해 7월 24일 이후 1년 2개월 만에 최고치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75%로 동결한다고 발표한 지 약 10분이 지난 오전 10시께 ‘빅피겨(큰 자릿수)’인 1,200원대에 진입했다. 올 초만 해도 1,080원대에 머물렀던 원·달러 환율은 10개월여 만에 10% 넘게 오르며 1,200원을 위협하고 있다.
달러화 강세는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로 위험 자산 기피 심리가 확산한 결과다. 여기에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인 ‘헝다그룹’ 위기에 따른 중국 경기둔화 우려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내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가능성 등 대외 악재들도 대표적 안전 자산인 달러 선호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은 외자운용원은 “최근 공급 측면의 병목현상이 예상보다 장기화하고 천연가스·석탄·원유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주요국의 국채금리가 상승하면서 달러화 강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투자가들의 신흥국 투자 심리 악화는 외국인 자금의 국내 증시 이탈로 이어지면서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외국인투자가들은 이날도 유가증권시장에서 8,000억 원 넘게 팔아치우며 6거래일 연속 매도세를 이어갔다.
가파른 환율 상승은 수입 원자재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준범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우리 기업으로서는 환율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즉각 반영하기는 힘든 만큼 그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며 “수출 경쟁력 자체가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기업의 마진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분간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를 저항선으로 변동성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오 연구위원은 “당분간 원화 약세 흐름이 유지될 것”이라면서 “특히 우리나라는 위안화와의 연동성이 높은 만큼 ‘헝다 사태’와 같은 부동산 리스크가 추가로 불거지거나 미중 무역 분쟁에 따른 피해가 가시화하는 등 중국발 리스크가 터지면 환율 상승과 함께 금융시장도 다시 출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원·달러 환율의 예상 범위를 연말까지 1,220~1,230원으로 전망했다.
한은도 최근 가파른 환율 상승세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대외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필요시 국고채 단순 매입 등 시장 안정화 조치를 실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달러와 함께 엔화와 위안화 등 주변국 환율도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원·엔 환율은 이날 오후 3시 30분 기준 100엔당 1,059원 62전으로 전날보다 7원 89전 내렸다. 반면 원·위안 환율은 1위안당 186원으로 강세를 이어갔다. 달러 강세로 주요국 통화가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유독 위안화만 강세를 이어가는 배경에 대해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직접 환율 관리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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