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 운송 항로의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주 4,647.60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할 정도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새로 배를 건조하는 가격이 지난 200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형성되면서 중고선 가격도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뛰어올랐다. 올 상반기부터 본격화한 해상 운송발 물류난이 연말 성수기 효과까지 더해지며 점점 악화하는 모양새다. 김영무 해운협회 부회장, 김주홍 자동차산업협회 상무,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 정석주 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무 등 협회 임원들로부터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물류난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이고 어떠한 대응 방안이 있는지 들어봤다.
해상운임 급등·반도체 품귀…중기, 생존 기로
자동차에 필요한 부품은 2만 개가량으로 그만큼 공급망 위기에 취약하다. 김 상무는 “중국 기업들의 반도체 재고 쌓아두기에 선진국 소비재 수요 확대로 공급 부족이 발생했다”며 “지난해 자동차 시장 침체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가 자동차용 반도체를 가전 등으로 전환했는데 자동차 수요가 급격히 늘며 수급난이 심화했다”고 최근 위기의 원인을 설명했다.
공급망 문제로 현대차·기아와 한국GM·쌍용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는 조업에 차질이 생겼고 2~3차 공급사들은 어쩔 수 없이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김 상무는 “재무 상태나 비용 구조가 열악한 중소기업은 갑작스러운 납품 지연에 따른 수익성 훼손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며 “자동차 원재료인 철광석과 구리·리튬·코발트 가격이 일제히 오르고 해상 운임마저 급등해 부품사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산업도 중소 업체가 더 큰 타격을 입는 분야다. 안 전무는 “반도체 원가 중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기 때문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제조사는 문제가 없다”며 “주로 중국에서 제조되는 원소재가 최근의 전력난 여파로 생산 차질을 빚으며 가격이 높아졌는데, 이 경우 소재를 공급하는 업체들의 부담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내년까지 해운 물류난 지속
지금의 공급망 불안이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운 환경은 산업계의 위기감을 한층 높인다. 김 부회장은 “해상 운임 상승을 촉발한 선복량 부족 사태는 공급(배)이 늘거나 물동량(수요)이 줄기 전에는 풀 방법이 없다”며 “올해 세계 컨테이너 해상 물동량은 전년 대비 6.3% 증가하고 내년에는 이보다 3.9% 늘어 구조적으로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조선 인도가 급증하는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선박 공급이 늘며 원양 항로를 시작으로 해상 운임이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차량 반도체 수급난도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김 상무는 “파운드리 수급 정상화까지 2~3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고 전했다.
중국 전력난에 따른 공급망 차질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 상무는 “중국 전력난이 계속될 경우 중국에서 배를 만드는 우리 기업들의 생산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며 “특히 원자재를 공급받는 중소기업들은 원자재를 구하지 못하고 원가 상승을 떠안아야 하는 부담을 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세제 등 맞춤형 대책 절실
산업계는 정부 차원의 맞춤형 대책과 기업별로 긴 안목에서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안 전무는 “원재료 수입가가 높아진 반도체 소재 업체를 위해 단기적으로 관세를 줄여줘야 한다”며 “기업들 역시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장기적으로 소재를 내재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원소재 내재화는 환경문제와 원가 부담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김 상무는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 중소 부품사를 대상으로 한 금융 지원책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부회장은 선주·화주 간 상생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장기 운송 계약을 체결하면 선사는 안정적인 물동량을 토대로 선박 발주 계획을 정교하게 짤 수 있다”며 “고객사도 물류난 걱정을 덜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최근의 운임 급등에 올라타 선사가 무분별한 선박 발주에 나설 경우 되레 운임 급락으로 해운 업계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경계했다. 공급망을 비롯한 생산 여건이 수시로 변하는 환경에서는 노동시장 유연성도 발맞춰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 상무는 “주 52시간 근로제의 유예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같은 인프라 개편이 필요하다”며 “수요가 많은 차종 위주로 생산 체계를 전환하는 협력적인 노사 관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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