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사를 앞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은행 앞에 길게 줄 선 사진을 보내오면서 “정말 전세대출을 못 받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그는 “걱정이 돼 잠도 안 온다”면서 “정말 그렇게 되면 나는 길에 나앉을 수밖에 없다”고 불안해했다.
현 정부가 임기 막바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부동산 관련 정책은 한 치 앞도 예상하기 힘든 살얼음판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전세대출 규제 방침을 내놓았다가 일단 철회했지만 조만간 전세 계약을 앞둔 실수요자들은 언제 또 정부가 기조를 바꿀지 모른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전세대출은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마지막 보루다. 역대 어느 정부도 전세대출만큼은 건들지 않았다. 시중에 불안감이 커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전세 실수요자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에서는 전세대출 규제 가능성이 언급된 자체만으로도 패닉에 가까운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세에 조기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 자체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금껏 꾸준히 누적돼온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 훼손’이다. 시장에서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관습들이 이번 정부 내내 하나하나 뒤집어지면서 불신이 쌓였기 때문이다. 전세대출 규제라는 이슈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혼선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임대차 3법이나 각종 거래 규제 등 앞서 나왔던 어긋난 정책들이 맞물린 결과다. 이런 상황이라면 또다시 예상하지 못한 정책이 나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움직이는 사람이 승자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대출부터 받아놓아야 한다며 은행 앞에 길게 줄을 선 것도 그 때문이다.
정책의 불확실성은 지금껏 ‘패닉바잉’ 형태로 시장의 부작용을 초래해왔다. 앞선 사례의 지인도 ‘전세살이’의 설움을 토로하며 “아무 걱정 없이 살려면 지금이라도 싼 집 하나 찾아서 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정책의 취지와 관계없이 언제나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나니 정책 신뢰가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제자리로 돌릴 건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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