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구옥희의 첫 우승으로 시작된 한국 여자 골프의 미국 무대 정복사가 33년 만에 200승 고지에 이르렀다. 현재 한국 군단의 에이스인 고진영(26)이 4타 차를 뒤집는 대역전극으로 국내 코스에서 찬란한 이정표를 세웠다. 197·198·199·200승이 모두 고진영의 손에서 나왔다.
고진영은 24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인터내셔널 부산(파72)에서 끝난 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연장 끝에 임희정(21)을 꺾고 우승했다. 상금은 30만 달러(약 3억 5,000만 원). 4라운드 합계 22언더파 266타로 동타를 이룬 뒤 18번 홀(파4)에서 치른 1차 연장에서 환상적인 하이브리드 샷으로 버디를 잡았다. 임희정은 파로 준우승.
시즌 4승으로 다승 단독 선두가 된 고진영은 넉 달 만에 세계 랭킹 1위도 탈환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않은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넬리 코르다(미국·3승)를 세계 2위로 밀어냈다.
한국은 이날로 LPGA 투어 통산 200승의 금자탑을 올렸다. 1988년 구옥희(2013년 사망)의 스탠더드 레지스터 제패가 시작이었고 한국 선수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던 박세리의 1998년 맥도날드 챔피언십을 기점으로 봇물처럼 우승 소식이 터졌다. 이듬해 김미현이 10승, 2012년에는 유소연이 100승 주인공이 됐다. 첫 승에서 100승까지 24년 걸렸는데 100승에서 200승까지는 이른바 ‘세리 키즈’의 맹활약에 9년밖에 필요하지 않았다. 최다 승은 박세리의 25승. 그다음은 박인비(21승), 김세영(12승)이다. 고진영은 신지애와 같은 공동 4위(11승)다.
사실 지난 8월까지는 연내 200승 달성이 쉽지 않아 보였다. 시즌 3승 합작에 그쳤고 5개 메이저에서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도쿄 올림픽 노 메달로 분위기는 더 처졌다. 그러다 고진영이 지난달 포틀랜드 클래식 우승으로 분위기를 바꿨고 한 달도 안 된 지난 11일 파운더스컵을 제패하더니 2개 대회 연속 우승까지 해냈다. 한국은 합작 6승으로 시즌 최다 우승의 미국(7승)을 압박했다. 남은 대회는 2개다.
임희정에 4타 뒤진 공동 2위로 출발한 고진영은 이날 정규 18홀에 버디만 8개로 8언더파를 몰아치는 ‘클래스’를 뽐냈다.
1 대 1 매치 플레이 같은 장군멍군 플레이가 4라운드 중반부터 이어진 가운데 고진영이 7~9번 세 홀 연속 버디로 1타 차 단독 선두에 나서자 임희정도 9번 홀(파5) 버디로 공동 선두로 올라갔다. 고진영이 12번 홀(파4) 버디로 다시 단독 선두가 되자 임희정은 14번 홀(파4) 버디로 동타를 만들었다. 15번(파5)에서 나온 임희정의 6~7m 버디가 쐐기포가 될 것 같았으나 고진영은 17번 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 기어이 연장에 갔다. 1차 연장에서 임희정이 버디가 가능한 거리에 두 번째 샷을 떨어뜨리자 고진영은 그린 경사를 절묘하게 이용한 샷으로 홀 한 발짝 거리에 공을 가져다 놓았다.
침착하게 버디로 마무리하고 축하 물 세례를 받은 고진영은 “프로 들어 첫 연장이라 설렘을 갖고 들어갔다. (임)희정이한테 조금 미안한 감도 있는데 제가 운이 더 좋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4타 차였고 상대가 워낙 기본기가 탄탄해 ‘2등 정도만 해도 좋겠다’는 마음이었다”면서 “197~200승을 해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고 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상금 상위 자격으로 출전해 LPGA 투어 직행 티켓을 눈앞에 뒀던 임희정은 아쉽게 기회를 다음으로 넘겼다. 이날도 버디만 4개를 잡는 등 나흘 간 보기 없는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고진영이 워낙 잘 쳤다.
김아림, 이다연, 안나린이 리디아 고(뉴질랜드)와 함께 17언더파 공동 3위를 했다. 전인지, 유해란은 16언더파 공동 7위. 디펜딩 챔피언 장하나는 12언더파 공동 14위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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