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미술 재료에 동물성 원료가 사용된 것들이 꽤 있어요. 동물 가죽으로 만든 아교를 칠한 종이도 있고 흰색이나 검은색 물감 중에는 동물 뼈가 들어간 것도 있어요. 소비자가 성분을 보고 고를 수 있으면 좋은데 물감은 전 성분 표기가 안 돼 있어요. 그래서 차라리 직접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죠.”
비건(육류와 계란·우유 등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적극적 채식주의자)이 먹거리를 넘어 뷰티와 패션까지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어몽트리는 친환경·제로웨이스트·비건을 지향하는 취미 미술 교실이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운영자인 윤다영 씨가 직접 만든 ‘비건 물감’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윤 씨는 올해 처음 자신만의 미술 교실을 열면서 자신의 신념대로 친환경적인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플라스틱 팔레트 대신 유리 접시를, 일회용 티슈 대신 다회용 수건을 비치했다. 하지만 물감은 마음에 드는 것을 구할 수 없었다.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는 물감도 있는데 성분 정보가 100% 공개되지 않아 제품 선택이 어려운 탓이었다. 화학과는 거리가 먼 미술학도임에도 직접 물감을 만들게 된 이유다.
어몽트리의 물감에는 안료와 아라비아고무액(안료가 종이에 잘 달라붙게 만드는 접착제 역할), 글리세린, 호두 기름 등이 들어간다. 윤 씨가 엄선해서 고른 안료들은 천연 광물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흙도 있다. 윤 씨는 “안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국내에서는 소포장해 파는 곳이 없어 대부분 직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재료 혼합 비율을 찾는 것도 정말 어려웠다”며 “몇 달 동안은 실험만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한 땀 한 땀 만든 물감을 보관할 용기를 선택하는 것도 고민거리였다. 동물들을 위해 비건 물감을 만들어놓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플라스틱 용기를 쓸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병뚜껑과 일회용 콘택트렌즈통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윤 씨의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자신이 모아서 세척해놓은 렌즈통을 기증해줬다.
수제 비건 물감으로 직접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 지구용레터의 마스코트 일용이를 어몽트리의 수채화 물감으로 그려봤더니 기성 제품 못지않게 맑고 선명하게 발색됐다. 그림을 오래 보관할 때 생길 수 있는 변색이나 갈라짐도 일반 물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윤 씨는 설명했다. 윤 씨의 물감은 제로웨이스트숍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다가 얼마 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원조 제로웨이스트숍 ‘알맹상점’에도 입점이 됐다.
이렇게 제품을 만들어 판매 중이지만 윤 씨는 물감 판매를 주업으로 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는 “고민을 하다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물감까지 만들게 됐지만 사실 개인이 물감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며 “대형 회사에서 비건이나 친환경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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