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은 투자자에게 너무 우호적인 환경이었다. 온 국민이 투자 활동에 노출된 지금은 투자 전성시대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향후 1~2년은 심화 과정에 해당하는 난이도가 있는 시장 국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일 교보증권이 ‘2022 교보지식포럼’에서 내놓은 해석이다. 올해까진 코스피가 ‘상승 곡선’을 그렸다면 내년부터는 높아진 지수 수준을 ‘현상 유지’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의미다.
지난해와 올해엔 풍부한 시중 자금과 실적 반등 기대감에 힘입어 주식 시장 전반이 강세를 보였다. 코로나19 확산기에 1,400대까지 떨어졌던 코스피지수는 올해 초 3,000선 돌파에 성공했다. 증시 랠리에 힘입어 ‘주린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신규 개인 투자자들도 대거 유입됐다. 하지만 미국을 필두로 각국에서 통화 정책 출구 전략을 꾀하는 가운데 기업 실적 랠리도 종반부를 향해 달려가면서 내년부턴 “사는 대로 오르는” 장세를 마냥 기대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매년 4분기마다 다음 연도 증시 전망을 내놓는다. 증권사들은 “공급망 대란이 끝나면 내년 코스피가 사상 최고점 경신을 시도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하반기 상승 동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난 1~2년간은 주린이를 위한 ‘기초 과정’이었다면, 향후 1~2년엔 유망 종목·테마를 직접 선별해야 하는 ‘심화 과정’에 해당하는 셈이다.
“2022년 코스피 2,800~3,600포인트”…‘상고하저’ 의견이 주류
31일 금융 투자 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내년 코스피가 최소 2,800포인트에서 최대 3,600포인트를 기록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구체적으론 △교보증권 2,850~3,450포인트 △삼성증권 2,800~3,400포인트 △신한금융투자 2,850~3,500포인트 △키움증권 2,950~3,450포인트를 내년 코스피 밴드로 제시했다. KB증권은 3,600포인트를 내년 목표치로 내놓았다.
전반적으로 상반기에 최고점을 찍고 하반기에 약세를 보이는 ‘상고하저’ 장세를 예상했다. 가령 삼성증권은 코스피 지수가 상반기 3,000~3,400포인트, 하반기 2,800~3,200포인트에 머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키움증권은 “2022년 상반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정책 불확실성 해소, 신흥국 위드 코로나 돌입, 공급난 완화 등으로 연중 신고가 경신을 예상한다”면서도 “하반기는 연준의 조기 금리 인상, 미국 중간 선거, 2023년 실적 불확실성 등으로 상반기 상승폭을 반납하는 흐름을 보일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내년 코스피 종목들의 영업이익은 약 8~1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내년 코스피의 2022년 영업이익 전망치로 올해보다 9.6% 높은 256조 원, 영업이익률 추정치로 기존 10.3%보다 0.3%포인트 높은 10.6%로 제시했다. 키움증권은 코스피200 종목의 2022년 영업이익이 올해 전망치보다 약 8.9% 늘어날 것이라고 해석했다. 키움증권은 “이전의 저성장 경로로의 회귀가 예상된다”고 했다.
“연말 공급망 차질 풀리면 상반기 최고점 돌파 시도”
“내년 상반기 코스피가 고점 돌파를 시도한다”는 전망엔 “연말에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비롯된 정보기술(IT) 분야 공급망 차질이 풀릴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공급망 차질만 완화되면 기업 이익 호조, 장단기 금리차 확대 등 ‘리플레이션’ 장세를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키움증권은 “최근 신흥국들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개선되고 있는데 이는 연초 이후 공급 측면에서 인플레이션 상승에 기여했던 요소들이 순차적으로 해소될 것임을 시사한다”며 “공급난이 예상보다 빨리 해소될 수 있다고 보는 배경은 신흥국들의 경제 활동 재개에 있다”고 설명했다.
테이퍼링과 공급난 차질에서 비롯됐던 강달러 흐름이 완화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2022년 상반기 달러화 지수는 하락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며 “통화정책 정상화를 미리 반영한 상황에서 배당 성향을 고려하면 현재 주가순이익비율(PER)보다 1~2배 상승할 여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코스피지수의 PER은 10배 수준인데, 이것이 12~13배까진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외국인 복귀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진다. 현재 코스피 시장 내 외국인의 점유율은 약 31%로 2015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키움증권은 “부정적인 외환시장 환경이 (최근) 외국인의 순매도를 자극했다”며 “통상적으로 연준의 정책 불확실성 해소 구간에선 달러화 약세가 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연말 이후 달러화 강세 진정에 따라 외환시장 환경은 외국인에 우호적으로 변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3월 9일 대통령 선거 모멘텀을 노려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삼성증권은 “2000년 이후 집권 1년차 주요 지수 평균 등락률은 코스피가 17.2%, 코스닥이 9.4%로 집권 3년차 다음으로 높았다”고 설명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새 정부 집권 초기 재정 지출 확대 기대, 정책 불확실성 완화에 따른 기업 투자 사이클 재개가 지수에 우호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반기엔 주식 시장 난이도 높아질 것”
2022년 하반기엔 미국의 테이퍼링이 종료되고 연준이 금리 인상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낼 전망이다. 우리나라 기업 실적 역시 2~3분기를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중간 선거는 G2 국가 간 외교, 그리고 미국 내 재정정책 불확실성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도 나온다.
우선 미국 중앙은행 정책 동향이 국내 증시에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오는 7월 미국이 테이퍼링을 종료하면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신한금융투자는 “기준금리 인상 시점은 2022년 하반기에서 2023년 상반기 어디쯤”이라며 “코스피 연간 고점 시기는 기준금리 인상이 가시화될 때가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반기는 실적 정점을 확인하는 시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올해 하반기 공급망 대란으로 실적 정점이 내년 상반기로 ‘이연’된 만큼 하반기 들어서는 기업 이익 불확실성이 점차 부각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증권은 “글로벌 컨센서스라 할 수 있는 모건스탠리인터내셔널(MSCI) 한국 2022년 주당순이익(EPS) 추정치는 87.2로 올해(87.7) 대비 ?0.5% 수준의 감익 전환을 상정하기 시작했다”며 “이는 2022년 실적 불확실성 재점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분명한 증거”라고 해석했다.
내년 11월 미국 중간 선거 역시 눈여겨봐야 할 이벤트로 통한다. 국내 증권사들은 미국 민주당이 중간 선거에서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상승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미국 민주당이 추진하는 재정 정책 모멘텀이 약화돼 글로벌 증시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중국에선 시진핑이 3연임에 나서는 20차 당대회도 예정돼 있어 미·중 패권 경쟁 관련 소음이 커질 여지도 있다.
삼성증권은 “미국 정치 및 연준 금리 인상 관련 정책 불확실성 재점화 가능성은 하반기 글로벌 장단기 금리차의 플래트닝(축소) 전환을 자극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해석했다. 일본 애널리스트 우라가미 구니오의 ‘증시의 사계절’ 이론으로 따지면 ‘실적 장세’에서 ‘역금융장세’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역금융장세는 △장단기 금리차 역전 △높은 인플레이션 △중앙은행 금리 인상 △기업 이익 둔화 등을 특징으로 삼는다.
실적 정점 속 커지는 ‘박스피’ 우려…지수보단 종목
교보증권은 예상 밴드와 별개로 내년 추정 코스피지수 평균치로 3,000~3,050포인트를 제시하면서 ‘박스피’ 전개 가능성을 제기했다. 교보증권은 “한국 수출 성장세가 유지된다면 코스피 평균 지수의 수준도 2021년과 2022년 사이에 큰 차이를 보이진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며 “수출 성장세 대비 2021년 코스피 상승폭이 컸던 것으로 판단할지가 고민”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과거 미국의 통화 정책 정상화 국면에서 나타났던 한·미 증시 탈동조화(디커플링) 현상은 지난 2년간의 실적 장세 이후의 ‘박스피’ 재도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주식 전체’를 사기보단 ‘종목·산업별’ 대응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해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증권사들은 공통적으로 자동차·반도체·신재생에너지·수소·건설을 주목할 테마로 제시하고 있다. 자동차·반도체의 경우 리플레이션 장세 재개에 대비해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최근 공급망 차질로 인해 낙폭이 컸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은 “장단기 금리차 확대에 기초해 경기민감 대형 수출·가치주 강세가 전면화되는 시장에선 반도체·자동차 보텀피싱(주가 바닥을 노려 매수하는 방법) 외 별도의 헤지 전략은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신재생에너지·수소의 경우 구조적 성장과 정책 모멘텀을 한꺼번에 꾀할 수 있는 종목으로 거론된다. 신한금융투자는 2022년에 직면할 핵심 이슈 중 하나로 ‘에너지 수급 불균형’을 꼽으며 에너지저장장치(ESS), 스마트그리드, 수소 인프라 관련주가 수혜를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탄소 중립 정책을 당론으로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으로 통한다.
건설주는 거시경제와 정책 유인에 따라 주가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다. 삼성증권은 “2022년 수출 경기 피크아웃에 따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기여도 빈자리를 내부 건설 투자 확대가 메워갈 공산이 크다”며 “주택 건설 투자 부진이 현재의 부동산 대란으로 파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정책 방향 선회 여지는 분명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내년 대선 결과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신한금융투자는 “여당 집권 시 내수·건자재·신재생에너지 등이, 야당 집권 시 중소형주·건설·원전 관련주 등의 수혜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